서울도 '줍줍 아파트' 나왔지만…분양가 비싼지 따져봐야

입력 2023-12-17 17:37
수정 2023-12-26 16:43

하반기 청약시장이 얼어붙으며 서울 브랜드 단지에서도 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 물량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청약 옥석 가리기’ 현상이 확산하면서 분양가가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계약을 취소하는 당첨자가 늘고 있어서다. 청약 가점이 낮은 실수요자 사이에선 분양 주택을 확보할 수 있는 무순위 청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당첨되고 보자는 식의 ‘묻지 마 청약’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 브랜드 단지도 ‘무순위 청약’ 속출 분양업계에 따르면 올해 서울 강북지역에서 최대 규모로 청약을 진행한 동대문구 ‘이문아이파크자이’(이문3구역 재개발) 미계약 물량 152가구(전용면적 59~99㎡)가 지난 15일 무순위 청약을 받았다. 이 단지는 지하 6층~지상 최고 41층, 25개 동, 총 4321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다. 지난 10월 진행한 1순위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은 16.87 대 1을 기록했다.

고금리와 고분양가 논란이 겹치면서 미계약 물량이 쏟아졌다. 이번에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152가구는 일반공급 물량(1467가구)의 9.7% 수준이다. 열 집 중 한 집은 주인을 찾지 못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 청약을 진행한 강동구 ‘e편한세상 강동프레스티지원’도 1순위 청약에서만 1만1437건이 접수돼 평균 경쟁률이 86 대 1에 달했다. 하지만 8가구 무순위 청약 물량이 나왔다. 평균 14.0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 청약에서 흥행에 성공했던 동작구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도 계약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잔여 가구에 대해 선착순 청약을 받았다.

무순위 청약 후 미계약 물량이 남은 단지도 있다. 구로구 ‘호반써밋 개봉’은 10월 72가구의 1차 무순위 청약을 받았다. 최근 48가구에 대해 다시 2차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강동구 ‘강동 중앙하이츠 시티’는 7월 특별공급에서 최고 189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후 미계약자가 속출하며 4차 무순위 청약까지 실시하는 등 미분양 소진에 애를 먹었다.

업계에선 분양가가 높게 책정된 서울 브랜드 단지에 부담을 느낀 청약 당첨자의 계약 포기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이문아이파크자이는 전용 84㎡ 기준 평균 분양가가 12억원이다. 8월 먼저 분양한 인근 ‘래미안 라그란데’의 같은 크기 분양가(10억7800만원)와 비교하면 1억원 이상 비싸다. ○‘묻지 마 줍줍’ 했다간 재당첨 불이익
무순위 청약은 가점제가 적용되는 일반 청약과 달리 100% 추첨제로 이뤄진다. 청약 가점이 낮아 일반 청약 당첨 확률이 적은 예비 청약자에게도 당첨 기회가 열려 있다. 게다가 2월 정부의 무순위 청약 신청 요건 완화 조치로 거주지나 보유 주택 수, 세대주 여부와 상관없이 무순위 청약이 가능해졌다.

무순위 청약은 일반 청약보다 훨씬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e편한세상 강동프레스티지원’은 8가구 무순위 청약에 2883명이 몰리며 최고 경쟁률 1017 대 1을 기록했다. 일단 청약에 도전하고 당첨되면 잔금을 고민한다는 ‘선당후곰’식 청약자가 상당수다.

전문가들은 청약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없지만, 당첨 포기나 취소 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남권 등 규제지역에서 공급하는 무순위 청약 단지에 당첨되면 최대 10년까지 재당첨이 제한된다. 동일한 아파트에 대한 중복청약도 금지돼 규제지역 내 다른 청약에 도전할 생각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고려해 청약해야 한다.

최근 무순위 청약 물량이 발생한 단지 대부분이 고분양가 논란을 겪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고분양가와 부동산 대출 금리 인상이 겹치며 잔금 조달 방안을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계약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일반 청약에 당첨되고도 고금리로 인한 대출 부담에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순위 청약 역시 일단 넣고 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했다가 계약을 포기해 다시 물량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