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18나노급 D램 핵심 기술을 중국 업체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 전직 삼성전자 직원 등 3명이 수백억원대 금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공범 한 명은 지난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나머지 두 명에게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춘)는 전 삼성전자 부장 김모씨와 관계사인 반도체 설비업체 A사 전 직원 방모씨가 수백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중국의 신생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CXMT)에 삼성전자의 18나노급 D램 공정 기술 등을 넘긴 혐의(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016년 김씨가 삼성전자를 퇴사한 뒤 중국 업체로 이직하면서 반도체 기술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대가로 중국 업체로부터 받은 연봉만 수십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피해 금액이 2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D램 공정·증착기술 빼돌려…삼성전자 피해액 2.3조 달해
기술유출 관련 양형기준 낮아…업계선 범죄자 강력 처벌 촉구검찰은 이들이 18나노급 D램 공정과 반도체 증착 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D램은 PC와 서버,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반도체다. 연산처리, 메모리 저장 등 고성능 전자기기의 중요한 부품 중 하나다. 증착 기술은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 표면에 1마이크로미터 미만 두께의 얇은 막을 입혀 전기적 특성을 갖도록 하는 기술이다. 반도체를 얼마나 소형화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기술로 휴대폰뿐만 아니라 갤럭시워치 등 소형 전자기기에 활용된다. 검찰이 확보한 자료에는 김씨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D램 공정도와 반도체 8대 공정 각 단계를 정리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기술 유출 정황을 포착해 지난 5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핵심 인물인 김모씨와 방모씨 등이 중국에 머물고 있어 수사가 지체됐다. 10월 이들이 귀국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삼성전자 하청업체 출신 등 인력 수십 명이 이번 기술 유출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기술 유출 사건 가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현행법은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 산업기술 유출 시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이 낮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관대하면 반도체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계 전반의 성장 동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씨 등이 반도체 기술을 빼돌린 창신메모리는 중국 최대 D램 제조기업이다. 2016년 설립 이후 중국 최초로 D램 양산에 성공했다. 2020년 D램 시장에 본격 진출해 중국 국부펀드 자금을 지원받으며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창신메모리는 작년 기준으로 세계 D램 시장에서 3%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5세대 초저전력 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검찰은 김씨와 방씨에 대해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이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권용훈/김익환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