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멜! 향기가 나는 듯한, 그 향기가 먹음직스러운 빵의 크림과 어우러지며 눈앞의 꽃처럼 펼쳐지는, 편하게 와 닿으면서도 마음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카페 ‘스멜츠’는 이미 블로거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스멜츠의 인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경기 광주시 오포의 신현리 뒷골목 경사지에 자리한 조그만 상가는 2018년 한 사람의 놀라운 비전으로부터 시작됐다. 건물을 임차했지만 전면 개보수에 가까운 리모델링으로 건물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화했다. 그가 본 것은 뒷산이었다. 건물과 1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경사면 방향으로 큰 창을 내 쉽게 보지 못하는 경관을 연출했다. ‘ㄱ’자로 꺾인 벽면이 없어지고 ‘ㄱ’자 큰 화면이 나타났다. 마치 아이맥스 영화를 보듯 드러난 뒷산의 나무가 건물에 성큼 다가온다.
그러나 뒷산의 경치는 평범한 우리 동네 뒷산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사람들을 이끌어낼 스멜츠만의 비법이 적용됐다. ‘ㄱ’자 벽면의 모퉁이 양쪽 면에 야외 조명등을 설치해 바깥 경치를 주목할 수 있게 했다. 그것도 ‘ㄱ’자의 한쪽은 따뜻한 노란색 등으로, 한쪽은 차가운 백색 등으로 했다. 두 개의 다른 조명은 똑같은 야외 경관을 두 개의 다른 화면으로 보이게 한다. 뒷산에서 뻗은 나뭇가지가 스멜츠의 큰 창 바로 앞까지 조명을 받으며 팔을 내뻗음으로써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자신이 카페에 앉아 있지만 자연 속에 내던져진, 그러나 편하고 안전한 공간 안에서 뭉클함을 간직하게 된다. 자연 속에 내던져진 듯한 공간
스멜츠는 이런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건축적인 수법을 절제했다. 뒷산을 향한 큰 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그저 바닥과 천장까지 통창이다. 실내를 밝히는 조명은 없다. 모든 조명은 유리창을 프레임하는 벽면을 밝힐 뿐이다. 오로지 창밖의 경관에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도록 건물 공간의 내부는 절제되고 비워져 있다.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 뒷산의 경치가 건축적인 요란함이 없는 오직 큰 창 하나에 의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마인드 마크’가 되도록 한 것이다.
스멜츠의 창밖 경치를 보고 있으면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 대할 만하다’는 두보의 시구에서 따왔다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의 강당 만대루가 연상된다. 두 곳을 모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스멜츠를 얘기하다가 왜 만대루를 얘기하는지 금방 이해할 것이다. 절제된 건축으로 외부 경관 살려
만대루도 정말 건물로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그저 18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대루에 올라서면 낙동강과 병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대루 각각의 기둥은 앞산의 경치를 자르는 액자 프레임이 된다. 우리는 기둥으로 구획된 7개의 광폭 액자를 통해 병산을 바라보는 셈이다. 물론 이곳에도 자연의 경치를 끌어들이기 위해 건물에는 인위적 수법을 쓰지 않았다. 그저 건물에 마땅히 있어야 할 마룻바닥과 기둥, 서까래와 지붕, 난간이 있을 뿐이다. 누구도 건물에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나무 기둥 사이로 탁 트인 경치만이 그들에게는 의미 있을 것이다.
병산도 그다지 아름다운 산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뒷산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왜 만대루에 서면 그 경치에 놀라게 될까? 왜 스멜츠에서 보는 뒷산이 그렇게 인상 깊은 것일까? 마치 액자 속에 있는 그림을 두고 왜 그 그림이 아름답냐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화가의 뜻과 구도, 기법들이 그림에 녹아 있듯 창 프레임으로 묶인 자연경관은 프레임을 만들어낸 건축가의 의도와 의미 속에 잠재해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유리창이나 액자 프레임을 통해 세상의 많은 것을 보지만, 정말 그것들이 스멜츠나 만대루에서처럼 대할 만한 정도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카페가 생겨나고 있지만 대부분 외부 경관을 끌어오기보다는 내부 인테리어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된다. 외부 경관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한계’로 인식된다. 그러나 스멜츠와 만대루는 그저 그런 외부 경치를 아주 작은 건축적 수법을 적용해 건물의 의미보다 더 큰 의미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스멜츠와 만대루에 놀라는 이유는 자연의 멋이 인위적 인테리어 효과보다 강하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