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택사스산원유(WTI)의 배럴당 가격이 7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한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3분기에 유가 상승 전망이 많아 관련 투자를 늘렸는데 실제 가격은 거꾸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 유가에 대해 "저점 부근"이라고 평가하지만, 일부에서는 30% 이상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2일 자정(뉴욕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택사스산원유(WTI) 선물 1월 인도분은 배럴당 68.47달러에 거래 중이다. WTI 가격은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산유국 감산 등의 영향으로 올 3분기부터 급등했고, 지난 9월 27일에는 93.68달러로 연중 고점을 찍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지난 10월 7일 발발, 중동산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자 시장에서는 배럴당 150달러 전망까지 나왔다.
이때 국내 증시의 개인 투자자들은 WTI 가격을 정방향으로 추종하는 파생상품을 많이 사들였다. 개인은 지난 10월 초부터 13일(한국시간)까지 KODEX WTI원유선물(H) 상장지수펀드(ETF)를 285억원어치,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을 225억원어치 사들였다. 같은 기간 WTI 가격을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과 KODEX WTI원유선물인버스(H) ETF는 각각 421억원어치, 452억원어치씩 순매도했다.
최근 이런 예상과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자 그동안 매수한 원유 파생상품 상당수가 손실 구간에 들어왔다. 유가가 떨어진 건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 범위 내로 들어오는 등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지난달 30일 감산 합의가 규모(하루 총 220만 배럴)와 기간(내년 1분기까지) 면에서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다.
향후 유가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맥스 레이튼 씨티그룹 글로벌원자재리서치센터장은 블룸버그TV를 통해 "산유국들이 감산 합의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내년 유가가 심각한 폭락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유가가 현시점 대비 30~50%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배럴당 70달러 인근에서 더 하락한다면 산유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시장 개입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유가가 저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균 삼성증권 이사도 "산유국 간 감산에 대한 이견이 표면화되거나 내년 경기가 경착륙하지 않는 이상 60달러대 중반이 지지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