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글로벌 선도 국가인 이유는 무엇인가? [마스턴 김 박사의 說]

입력 2023-12-13 09:52
이 기사는 12월 13일 09:5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다시 12월이 돌아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시기가 되면 미련과 아쉬움 그리고 변화와 진보에 대한 기대가 교차되기 마련이다. 2024년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자산운용업 내지는 금융산업에 대해 유명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차용하여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드라마 ‘뉴스룸(Newsroom)’은 제작국인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드라마다. 영상 클립으로 많이 돌아다니는 가장 유명한 장면은 극도로 냉소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소위 “미국이 가장 위대한 국가인 이유” 장면인데 한 대학교에서 진행된 토론에서 한 학생이 미국이 가장 위대한 국가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질문의 형태를 변형해서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

한국이 글로벌 선도 국가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 질문은 교정이 필요하다. 보다 정확하게 묻는다면 “당신은 한국이 글로벌 선도 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는 2가지 질문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국토 면적 순위 109위, 2022년 경제성장률 122위의 국가가 글로벌 선도국가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국내총생산은 한때 최고 8위였고, 수출입 순위는 여전히 전 세계 6~8위권이며, 국가 존립의 근간이 되는 국방력 순위는 전 세계 6위인 국가이다.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한국은 독자적인 발사체를 보유하고 달 뒷면에 탐사선을 보낸 7대 우주기술 보유 국가이며, 대표 기업 중 하나인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최초이자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양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의 핵융합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기초과학에 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래를 위한 기술 분야를 선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국가다.

문화와 예술 분야는 보다 명확하다. 한강 백희나 작가와 같은 뛰어난 문학가들은 글로벌하게 그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해외에서 공부한 유학생이나 현지 교포가 아닌 한국에서 공부한 한국인들이 유럽에서 열리는 권위 있는 콩쿠르 결승에서 경쟁한다. BTS와 블랙핑크의 위상으로 K-POP을 자랑하는 것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골프, 축구, 야구에서 한국 시스템이 육성한 선수가 전 세계에서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과 체계는 분명히 글로벌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그럼 이제 금융산업, 좁게는 자산운용업과 그 연관 분야를 살펴보자. 금융에서 한국은 글로벌하게 시장의 모범이 되거나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가? 또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감지하여 멀지 않은 시기에 선도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드라마 ‘뉴스룸’의 주인공 윌 맥어보이가 대학생에게 해준 답변을 차용하면 될 것이다. 금융 분야가 글로벌 선도라는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There is absolutely no evidence to support the statement). 그리고 주인공 윌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방법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다. (The first step in solving any problem is recognizing there is one)”

그리고 문제를 인식했으면 개선을 위해 한 걸음 내 딛어야 할 것이다. 자산운용사가 글로벌 최고가 아닌 글로벌 선도 분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직업 전문성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윤리에 기반한 선관주의(善管注意) 의무의 실천이다.

개인의 저축, 공제회/연기금의 적립금, 국가의 유보된(Reserved) 부를 관리하고 그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직업군의 직업 윤리와 규제는 어느 정도면 적당한 것인가? 미국의 초대형 투자은행은 급한 업무가 있으면 회사의 전용기를 이용하게 한다. 하지만 출장 후 공항에서 집까지 귀가하는 정액(定額)으로 지급하는 $100달러의 택시비를 부당 청구한 직원에 대해서는 발견 즉시 해고한다.

왜 금융인에 대해서만 직업 윤리를 빡빡하게 요구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글로벌 신뢰도 조사(Ipsos Global Trustworthiness Index 2023)에서 한국인들의 직업군 신뢰도에서 정치인은 조사대상 82개 국가 중에서 압도적으로 낮은 순위이고, 금융인을 대표하는 은행원은 전세계 평균 이상의 신뢰도를 표현하였다. 정치인들도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제약이 있고, 재산 공개제도도 있고, 인사청문회도 있다. 하지만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신뢰를 먹고사는 금융인들도 언젠가는 정치인만도 못하는 신뢰도를 가질지 모르는 것이다.

‘금융은 규제 산업이다.’ ‘국가 간 장벽 때문에 금융은 글로벌 선도가 되기 어렵다.’ ‘국내 규제 기관은 세세하게 지적하고 감독하기 때문에 금융 발전이 어렵다’, ‘우리의 사업 방식은 금융 분야의 관행이다. 재수가 없어서 걸렸을 뿐이지…’ 드라마에서 미국이 왜 가장 위대한 국가인지 물어본 대학교 2학년 학생 수준의 철없는 사고는 그만하자. 2024년은 전문성 확보를 위한 변화와 직업윤리를 강화를 위한 진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