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의 종목 보고서가 '매수' 등 긍정적 의견 일색인 것과 관련해 "부정적 의견을 내면 개인 투자자의 항의를 받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나왔다. 예민한 이슈에 대해 논하지 않는 '무난한 보고서'가 대세인 최근 상황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강현기 DB투자증권 연구원은 11일 발표한 '50.6%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습니다' 보고서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이 보고서의 제목에 나온 '50.6%'는 국내 증시 상장기업의 내년 영업이익 증가율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다. 2024년 상장사 영업이익이 2023년 대비 50.6% 늘어날 것으로 증권사들이 추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강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최근 전문 투자자와 미팅을 하면 이 수치가 현실성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숫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처럼 과도한 컨센서스가 형성된 이유가 뭘까"라고 자문한 뒤 과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십수년 전 투자전략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식시장에 대해 하락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며 "보고서가 나간 뒤 어떤 투자자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 '강현기를 당장 (인사)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당시 상사가 이 민원인을 응대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원은 "양질의 애널리스트 의견이 제시되기 위해서는 이를 수용하는 세상의 태도가 중요하다"며 "직선적 사고와 더불어 낙관적 편향이라는 암묵적 관행이 더해져 과도한 내년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선적 사고'는 올해 3분기까지 기업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잘 나왔고, 이런 흐름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최근 증권가에서 내년 실적 컨센서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강 연구원 뿐만이 아니다. 2010년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7.1% 증가했던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나온 동시다발적 부양책 덕분이고 최근 상황은 당시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2021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3% 증가한 것도 코로나19 부양책 덕분이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