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달에 간 것보다 더 큰 역사적 사건이다.”
국내 유전자 편집 치료제 개발기업 툴젠 창업자인 김진수 싱가포르국립대 의대 교수는 10일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편집 치료제 카스게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게 세계 제약사에 오래 남을 ‘초대형 사건’이라는 의미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치료제가 없던 유전성 희귀질환, 암 등을 고치게 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유전자 편집한 세포, 환자에게 이식크리스퍼테라퓨틱스와 버텍스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카스게비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다. 아프리카계 흑인에게 많은 질환으로 미국 환자는 1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낫 모양으로 바뀐 적혈구끼리 서로 얽혀 혈관을 막는 ‘혈관폐쇄(VOC)’는 신장·심장질환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는 대부분 이런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환자는 평생 수혈을 받아야 하며, 건강한 사람의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게 유일한 치료법으로 꼽힌다.
카스게비 치료는 혈액암 환자들이 많이 받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과 치료법이 비슷하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교정한’ 자가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방식이다. 이식을 위해 환자 몸속 조혈모세포와 골수를 없애야 해 치료 부담이 크다는 것은 한계로 꼽힌다.
카스게비 개발사들이 시판 허가를 위해 FDA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이렇게 치료받은 환자 31명 중 29명(93.5%)에게 추적관찰 기간 24개월 동안 혈관폐쇄 등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다. 약값은 220만달러(약 29억원)다. 평생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원샷 치료제’지만 상당히 고가다. 각국 정부의 보험 범위에 따라 활용이 달라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른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도 허가카스게비와 함께 블루버드바이오의 리프제니아도 같은 날 FDA로부터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이 치료제는 정상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담아 환자 몸속에 직접 넣는 방식의 치료제다. 가격은 310만달러로 카스게비보다 비싸다. ‘크리스퍼’ 선점 위한 소송전도 관심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한 의약품이 시장에 나오면서 업계의 관심이 기술에 얽힌 특허 분쟁으로도 쏠리고 있다. 글로벌 크리스퍼 기술 특허 전쟁은 3파전 양상이다. 국내 바이오기업 툴젠과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연구자들이 속한 CVC그룹(미국 UC버클리-오스트리아 빈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대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 등이다. 유전자 치료제 산업의 성장을 위해선 특허 관련 불확실성이 우선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올해 3월 미국 특허청은 CVC그룹과 브로드연구소 간 소송전에서 브로드연구소 손을 들어줬다. 툴젠 관계자는 “CVC그룹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라며 “내년 2심 결과가 나오면 미국 특허청이 해당 재판의 승자와 툴젠 간 선발명 여부를 가릴 예정”이라고 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