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도시 흉물 '닭발 가로수'를 아시나요

입력 2023-12-08 17:55
수정 2023-12-09 00:23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강변 아파트 단지에 느티나무 서른 그루의 가지치기 작업이 있었다. 알록달록 가을 색을 입기 시작한 나뭇잎과 풍성했던 가지들이 모조리 잘려 나가 마치 전봇대 같은 앙상한 기둥만 남겨졌다. 나무 위 둥지를 잃은 까치떼가 한참 동안 ‘깍깍’ 울며 주위를 뱅뱅 돌았다.

이런 참혹한 풍경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아파트 3층 주민들의 요구가 있었다. 3층 높이까지 올라선 나뭇잎과 가지에 ‘한강뷰’가 가려져 집값이 떨어진다며 나무를 베라고 요구한 것이다. 가지치기 현장에서 그들은 “더, 더, 잘라내라”고 소리쳤다. 전국 가로수 가지치기는 매년 110만 건에 이른다. 도심 곳곳에선 과도한 가지치기로 흉물이 돼버린 가로수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 나무의 모양이 앙상한 닭발을 닮았다고 해서 ‘닭발 가로수’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아예 나무가 통째로 베어진 사례도 많다. 경부고속도로 판교 나들목에서 분당으로 이어지는 500m 도로 양쪽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분당·판교의 명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30년 수령의 메타세쿼이아 70여 그루가 무참히 잘렸다. 시민 항의에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성남시가 낸 해명자료에는 인근에 신축되는 호텔 진출입로와 교통 흐름을 감안해 가로수 이식·제거가 불가피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나무들이 잘려 나가는 이유는 도시개발사업과 각종 민원 때문이다. 민원은 다양하다. 은행 열매 냄새가 난다, 전기합선 우려가 있다, 상가 간판을 가린다, 벌레가 생긴다, 도보에 방해된다 등등.

나뭇가지가 자라 전신주의 고압전선에 닿으면 전선이 끊어질 수도 있고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안전 문제가 있을 땐 반드시 가지치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흉물스러울 정도로 가지치기를 남발해 닭발 가로수를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한 지자체에 물었더니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고 했다. 매년 적당히 가지치기를 하면 돈이 많이 드는 만큼 한꺼번에 쳐내버린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폭염과 공기오염,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도심에 나무를 심는 도시숲 조성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산림청의 도시숲 사업엔 누적 1조원 가까운 국비가 투입됐다. 서울시는 지난 5월 ‘365일 서울 어디서든 5분 거리에서 정원을 만날 수 있다’는 정원도시 프로젝트에 2026년까지 총 68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한쪽에선 무참히 나무를 베어 버리고, 다른 한쪽에선 국민 혈세로 나무를 심는 이중 행태다.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선진국에선 가로수 관리 조례를 만들어 함부로 가지치기할 수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 과도한 가지치기는 가지를 자른 절단면이 병해충에 노출되고 기능을 잃어 나무가 죽을 수도 있어서다. 이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는 숲이 도시 지붕의 역할을 하도록 나무를 잘 관리하는 ‘어반 트리 캐노피(Urban Tree Canopy)’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잎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의 총량이 많아야 하고 나무 그늘의 면적을 최대한 늘려 아름드리로 자라도록 관리한다는 목표다. 나무가 크게 자랄 수 있도록 필요시 도로의 폭과 차선을 줄이는 정책까지 고려한다.

한국도 가지치기 지침은 있다. 환경부는 올해 수목 부분의 25% 이상이 잘려나가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는 강제성이 없는 ‘권고’에 그친다. 산림청도 관련 규정이 있지만 가지치기의 정도를 나타내는 강전정과 약전정의 구체적인 기준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아파트와 같은 민간 소유 부지에는 지침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나무와 숲은 공공재로서의 역할이 크다. 나무 한 그루는 공기청정기 10대, 에어컨 10대의 효과를 발휘한다. 나무숲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여름 한낮 평균기온을 3~7도가량 낮추고 습도는 9~23% 높여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한다. 무엇보다 나무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기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안 그래도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게 나무다.

아파트 한강뷰와 상가 간판은 중요한 문제지만 환경과 공공의 이익도 고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길 바라본다. 봄이면 만발하는 오만가지 색의 꽃잎과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빛 나뭇잎을 계속 보고 싶다. 나무가 죽는 회색 도시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