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여기서 살자"…3040 맞벌이 부부가 반한 도시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4-03-21 07:11
수정 2024-03-31 19:36




일본 저출산 극복의 현장을 가다⑥에서 계속 일본 지바현 나가레야마시(市)는 ‘육아 전문 도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2004년 15만 명 안팎이었던 나가레야마의 인구가 2023년 약 21만 명으로 40% 늘었다. 30~40대 육아세대가 크게 늘면서 일본에서 0~9세 인구가 75세 이상 인구보다 많은 단 두 개의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다.

나가레야마시청은 구시가지에 있다. 신시가지 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신시가지 시민홀에서 여권 발급을 포함한 모든 민원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도쿄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들을 고려해 업무 시간은 평일 저녁 7시까지, 토요일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늘렸다.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숲의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나가레야마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전철역 남쪽 출구 광장. 나가레야마에 임장을 온 맞벌이 부부는 이 광장에서 공원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을 보면서 "그래, 여기서 살자"라고 결정한다고 한다.

이 가로수도 같은 크기의 나무를 단순하게 일렬로 심은게 아니다. 앞쪽에는 키 큰 나무를 심고 뒤로 갈수록 점점 작은 나무를 심는 원근법을 활용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자키 요시하루 나가레야마 시장은 "키가 같은 나무를 심는 것과 예산은 같지만 효과는 훨씬 크다"고 말했다.



남쪽 출구 광장은 시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왠지 모르게 차분하다. 광장을 거닐어보면 아이 키우기 참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유심히 살펴보면 자극적인 색깔의 간판이 없다. 나가레야마시는 10년 전 마을 미관 조례를 만들었다.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주택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빨간색, 노란색 간판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조례 이전에 만들어진 간판은 시청 직원들이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교섭을 한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상징인 전자양판점이 나가레야마에서는 흰색과 빨간색으로 간판을 바꿔달기도 했다. KFC 같이 상징색이 빨간색이어서 도저히 바꿀 수 없으면 글자의 크기를 작게 만든다. 건물 높이, 건물의 녹화 면적 등도 의무화했다.

최고의 육아환경으로 30~40대 육아세대를 끌어들인 나가레야마가 다음으로 공을 들이는 분야는 교육, 고용, 의료다.



나가레야마는 2008년부터 초등학교 5~6년생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했다.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이 의무화하기 10년 전부터다. 2020년 영어검증능력 3급 상당의 학력을 갖춘 일본의 중학생은 44%였다. 나가레야마시는 62.9%에 달한다.

2021년 일본 정부가 목표를 50%로 높였을 때 나가레야마에서 영어 3급 수준을 갖춘 중학생 비율은 69.9%였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에서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대형 물류센터 같은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도 유지했다. 단순히 육아가 쉬운 환경이 아니라 아이 옆에서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재택근무의 보급까지 보태지면서 최근 5년간 나가레야마로 이주하는 사람 가운데 도쿄로 출퇴근하는 사람보다 시내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늘었다.

종합병원을 유치하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한 곳을 유치했고, 올 여름을 목표로 또 한 곳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좋은 학군 만들기, 고용, 의료서비스 확충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육아를 위해 나가레야마시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아이가 자란 뒤에도 도쿄로 빠져나가지 않고 평생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좋은 학군'을 만들어서 아이가 수험생이 돼도 나가레야마에 계속 살게 만든다. 도쿄로 출퇴근하는 사람보다 나가레야마에서 일하는 사람을 늘림으로써 돈을 지역 내에서 돌게 한다. 종합병원을 유치해 노후에도 안심하고 나가레야마에 거주할 수 있게 만든다.



나가레야마시는 이주해 오는 주민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자키 시장은 "육아, 교육, 주거 환경이 나가레야마의 인센티브"라고 말한다.

지난해 시가 실시한 조사에서 '나가레야마시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응답은 89.6%였다. '앞으로도 계속 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응답자 비율은 91.2%였다. 일본 저출산 극복의 현장을 가다⑧로 이어집니다.


지바 나가레야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