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한국경제신문 문화부는 출판 담당 기자들로 북적인다. 토요일 자에 두 페이지를 털어 쓰는 ‘책마을’에 실을 책들을 고르기 위해서다. 출판사들이 신문사에 보내는 신간은 매주 50~100권에 이른다. 이 중 ‘선택’받는 책은 많아야 10권. 그러니 기자들은 ‘매의 눈’으로 △확실 △모호 △탈락으로 분류한 다음 ‘확실’과 ‘모호’ 판정을 내린 책들을 훑어보며 최종 선정한다.
탈락 기준은 꽤나 명쾌하다. 가벼운 심심풀이 책, 제목 장사하는 책, 논문 같은 책, 베스트셀러의 아류 같은 책…. 최근 들어선 ‘유튜브 쇼츠로 대체 가능한 책’이란 잣대도 하나 더했다. 아무리 인기 작가가 썼더라도 내용이 너무 단순하거나 메시지가 명확해 1분짜리 쇼츠에 다 담아낼 수 있는 책은 가능한 한 배제하자는 것이다. 그런 책에 대한 소개는 쇼츠에 내주고, 책마을은 독자들이 ‘생각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으로 골라보자는 취지다.쇼츠가 훨씬 재미있지만재미로 따지면 책은 쇼츠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각각의 유저가 관심을 갖는 영상들만 골라 보여주니, 눈 한 번 깜빡하면 훌쩍 1~2시간이다. 자극적인 영상과 빠른 속도감으로 무장한 ‘콘텐츠 괴물’을 활자가 어찌 맞서겠는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로 읊어주는 지식과 정보를 활자가 어찌 이겨내겠는가. 책은 그렇게 즐거움과 정보 전달 창구로서의 역할을 영상에 내주고 있다.
그렇다면 책이란 매체는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것인가. 전문가들은 “독서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을 발전시키는 힘’을 기르는 것이자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정보와 재미를 머릿속에 ‘강제 주입’하는 쇼츠에선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미래 기술 패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손에 구닥다리 같은 책이 항상 들려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영국 테크 기업 소프트와이어는 직원들의 책값을 모두 지불해준다.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대신 돈을 낸다. 무슨 책이든 읽으라는 것이다.다시 책과 친해질 때전문가들은 독서가 이처럼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란 점에서 ‘몸의 근육’을 불리는 피트니스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근육이 불어나는 게 느껴지는 순간부터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효과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몸과 정신의 ‘건강’이란 점도 비슷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이 책과 멀어진 건 여러 수치로 확인된다. 얼마 전 통계청 발표 자료를 보니 13세 이상 인구 중 최근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본 사람이 절반(51.5%)을 넘었다. 몇 년 전에는 한국인의 독서량이 조사 대상 191개국 중 166위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도 있었다. 반면 2018년 10월 395억 분이었던 한국인의 유튜브 사용 시간은 지난 10월 1044억 분으로 5년 동안 2.6배 늘었다. 생각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덤벨’을 우리 스스로 내던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20여 일 뒤면 새해다. 금연이나 다이어트처럼 독서를 신년 결심 목록에 넣어보는 건 어떨까. 새해를 기다릴 것 없이 지금 당장 서점에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