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물가상승률 둔화세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기준금리가 지난 1월 이후 연 3.5%로 동결된 가운데 2.3%까지 떨어진 물가가 3%대로 높아졌다.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은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은 한국보다 낮아졌다. 한국의 실질 기준금리가 주요국 대비 덜 긴축적인 수준이 된 것이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11월 3.3%를 나타냈다. 8월 3.4%, 9월 3.7%, 10월 3.8% 등에서 상승 흐름이 큰 폭으로 꺾였지만 저점을 기록한 7월 2.3%에 비해선 여전히 1%포인트 높다. 물가가 3%대에서 움직이면서 실질 기준금리 수준은 6~7월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명목 기준금리와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차이로 계산한 실질 기준금리는 11월 기준 연 0.2%로 나타난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5%가 1월부터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에 지난달 물가상승률 3.3%를 반영한 값이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9월(연 -0.2%)과 10월(연 -0.3%)에 비해선 높아졌지만 고점에 비해선 크게 낮아졌다. 마이너스까지 갔던 실질 금리
한국의 실질 기준금리는 6~7월만 해도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했다. 당시 물가상승률이 각각 2.7%, 2.3%를 기록하면서 실질 기준금리는 연 0.8~1.2%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의 이자율은 이미 긴축적인 수준이고, 명목이자율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금리를 보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높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주요 선진국의 물가 흐름이 크게 둔화하면서 한국의 실질 기준금리는 주요 선진국 대비 낮아졌다. 기준금리가 연 4.5%인 EU는 물가가 11월 2.4%까지 하락하면서 실질 기준금리가 연 2.1% 수준으로 높아졌다. 영국은 9월부터 연 5.25%의 기준금리가 유지된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9월 6.7%에서 10월 4.6%로 떨어졌다. 실질 기준금리는 연 -1.45%에서 연 0.65%로 크게 올랐다. 기준금리가 연 5.25~5.5%인 미국은 물가상승률이 3.2%까지 낮아지며 실질 기준금리가 연 2.05~2.3%로 높아졌다. 캐나다는 기준금리를 연 5%로 유지하고 있다. 물가(3.1%)를 반영한 실질 기준금리는 연 1.9%다. 과도한 정부 개입의 '청구서'고물가 장기화로 실질 기준금리가 낮아지면서 현재의 기준금리가 완화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금리는 여전히 긴축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말 통화정책방향 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물가상승률이 이제 두세 달 내려갈 것으로 본다”며 “(물가 반등은)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긴축적이냐의 견해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상황지수’를 보면 작년에 비해 충분히 긴축적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금융상황지수는 금리, 환율, 주가 등 6개 금융 변수(월평균 기준)를 활용해 산출하는데 0보다 낮으면 긴축적, 높으면 완화적으로 여겨진다. 작년 초 2를 넘어 완화적으로 해석됐던 이 지수는 물가가 2.3%까지 하락한 7월에는 -1.5 수준으로 내려갔다. ‘긴축적’이란 판단을 고수한 이 총재의 발언을 감안하면 이후에도 0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긴축적인지 여부는 결국 향후 물가 수준에 달릴 전망이다. 다시 물가가 오른다면 금리가 완화적인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
더딘 물가 둔화는 작년 이후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 따른 청구서다. 공공요금 인상 통제를 통해 물가상승률 고점을 주요국 대비 낮게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에 따른 상승 압력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금리 인상 자제를 압박했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못했다. 눈앞의 정책 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결정이 고통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정부와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