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금리 모두 불확실하지만 아시아 시장은 매력적입니다. 저평가돼있기 때문입니다."
조슈아 크랩 로베코 아시아태평양 운용 부문 대표가 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아시아 시장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다. 로베코는 1929년 설립된 네덜란드의 글로벌 자산운용사다. 전 세계에 16개 지사를 두고 있다. 상반기 말 기준 로베코는 1810억유로(약 258조원)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고, 이 중 1780억유로(약 253조원)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통합에 투입하고 있다.
크랩 대표는 현재 증권시장 전반에 부정과 긍정 요인이 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지정학적 위험과 고물가, 고금리 등은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며 "노동자 임금도 올라가고 있어 기업을 압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권 시장에선 곧 경기 침체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까지 염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과거 사례를 봤을 때, 금리 인상 국면이 끝나면 주식 시장은 대체로 좋은 성과를 냈다"며 "인플레이션이 점차 진정되고, 금리는 고점에 다다랐기 때문에 종목, 업종을 선별해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크랩 대표는 로베코의 투자 키워드로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미 국채금리 10년물 기준 4~5%대 이자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지속가능성 투자 측면에서 다른 기회가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지속가능성 트렌드가 계속해서 시장의 주류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규제 당국과 기업, 투자자가 모두 집중하고 있는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ESG를 믿건 믿지 않건 지속가능성은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며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실시했고, 태양광, 풍력, 전기차(EV) 등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제품의 공급망은 아시아에 있다"며 아시아 시장을 재차 강조했다.
로베코는 아시아 시장에 투자 기회가 있다고 봤다. 아시아 시장은 미국보다 인플레이션 강도가 약하다는 게 매력이라고 진단했다. 물가 상승률이 낮으면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고려하게 되고, 금리가 인하하면 주식 시장에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은 커진다는 설명이다.
크랩 대표는 "코로나19 시기 아시아 지역에서 발을 빼지 않고 아시아 전담 인력을 늘렸다"며 "지속가능성 전환 추세 속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수익을 잘 낼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시장이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도 갖췄다고 언급했다. 그는 "현재 아시아 증시의 밸류에이션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발했던 2009년 수준"이라며 "'매그니피센트 7'에 힘입어 미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은 고점에 있어 미국과 아시아 간 밸류에이션 차이가 벌어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매그니피센트 7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엔비디아, 테슬라, 메타 등 대형 기술주 7개를 뜻한다.
이어 "2000년대 초반에도 지금처럼 미국 증시가 아시아에 비해 고평가됐다"며 "이후 수년간 아시아 증시의 수익률은 미국을 웃돌았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대해 크랩 대표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통합도가 높아 미국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악화한다면 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상장사 가운데 인공지능(AI) 공급망에 포함된 일부 기업은 저평가돼있어 투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선 "로베코는 매수 전략을 취하는 롱온리(long only) 펀드이기에 공매도 금지 여부가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며 "시장 참여자 중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한 주체가 있어 공매도가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주체들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시장은 정상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