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40~50대 여성이 최근 알콜 의존중에 시달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 '술 권하는 문화' 속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화이트 칼라 여성들이 중년에 접어들면서, 사회·가정에서 커지는 역할과 부담감에 짓눌린 탓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전문직 여성들의 음주 및 약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성의 알콜 관련 사망자 수는 2020년 10만명당 8.7명으로 남성(17.5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팬데믹 기간 음주 관련 사망률은 남성이 17%, 여성이 24% 증가했다. 여성의 경우 알콜 문제는 고소득 전문직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따르면 고소득층의 경우 24%가 일주일에 14잔(한 잔=10ml또는 8g의 순수 알코올) 이상의 술을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최저 소득층의 경우 8%만 14잔 이상의 술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FT는 이 같은 현상 원인을 급격한 여성 지위 향상 과정에서 고학력·고소득 여성들이 과거 남성 중심 문화에 동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했다. 인사 컨설턴트인 자넷 해들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40대와 50대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임금을 받으며 성장한 첫 세대"라며 "파티를 열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능력도 동등해졌지만, 생리적으로 남성만큼 알코올을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며 폐경기 전후로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많은 여성이 승진을 위해 남성 상급자들과 술을 마시는 등 직장에서 '이너 서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어 FT는 "현재 40~50대가 된 많은 여성은 음주가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에 직장에 입사했다"고 분석했다.
가정 내에서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도 알콜 의존증의 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45세의 라이프 코치 사라 윌리엄슨은 "40대 중반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며 "많은 친구들과 사랑스러운 남편, 두 아이와 멋진 집이 있었지만 내면에서는 공황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고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술은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지름길을 찾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 남성과 같이 음주 교통사고나 경찰에 체포되는 등의 큰 사고를 내는 일이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알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FT는 지적했다. 사회의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두려워해 의사 앞에서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FT는 술을 끊은 직장인의 사례를 들며 기사를 마무리 했다. 전직 회계사인 산드라 파커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낙인이 찍히지만 안 마시면 낙인이 찍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월리엄슨 역시 "과거 일요일 밤이면 항상 파멸이 임박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술을 끊고 나니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