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부터 29일까지 정부 전산망에 최소 여섯 차례 장애가 발생했다. 정부의 무능한 대응은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고, 오만함과 제 식구 감싸기는 어처구니가 없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사태를 분석하고 필자 나름대로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첫째,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오류 발생 9시간 후인 오후 5시40분에 처음으로 정부 공식 입장을 내놨다. 납부 기한을 연장하고 먼저 수기로 접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일과시간이 다 끝난 시점이었다. 데이터센터 화재에 이은 카카오 먹통 사건 때의 준엄했던 정부는 어디 갔나? 거대한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복구목표시간(RTO· Recovery Time Objective), 목표복구시점(RPO· Recovery Point Objective) 같은 기본적인 개념도 보이지 않았다. 민간사업자 같으면 4시간만 넘어도 기관 경고에 영업정지 같은 온갖 행정벌을 운운했을 것이다. 자기들의 실패는 외면하고 오로지 국민들을 혼내고 벌주는 것이 정부와 공무원들의 본업인가?
둘째, 사태 추이에 대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전원 구조됐다는 행정안전부 차관의 기자회견에 의해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에게 전대미문의 트라우마를 안겼다. 이번 전산망 장애 사태는 특히 투명성이 중요했다. 정부 이외에 누구도 현장을 볼 수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일방적인 발표와 형식적인 정보 제공만 있었다. 국민들의 지혜를 구하는 공감도, 불안감을 해소해 줄 전문성도 없었다.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몇십여만 건을 정상 처리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지만, 1주일 넘게 전산망 이곳저곳에서 장애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셋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계(complexity)에서의 원인 규명은 찾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니 그중에 어떤 변수가 원인이 된다고 판단하는 게 정책 결정의 핵심이다. 행안부는 당초엔 네트워크 장비인 L4 스위치 이상이라고 하다가 지난달 25일 브리핑에서는 번복했다. ‘라우터(L3) 포트 손상’을 원인이라고 하고, 제조사인 미국 시스코조차 원인을 알기 힘든 “아주 특수한 장애”라고 한다고 눙쳤다. 정보기술(IT) 강국의 국민들은 어지간한 기초지식이 있다.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즉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대목이 없다는 억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가 전산망은 이름, 주소 등 2만 개 안팎의 데이터 항목에 각각 수백 배 이상의 데이터가 섞여 있는 상황에서 전혀 통합되지 못한 수많은 프로그램이 제각기 데이터를 찾아다니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현장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국민은 직감하고 있다. 그저 아무도 다치지 않을 원인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진정한 문제는 숨기고 있다는 의심이 팽배하다.
넷째, 사후 복구를 해야 한다. 피해를 살펴서 보상해줘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려진 피해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6544건의 전입신고는 소급 처리돼 피해 사례가 아니라고 한다. 은행 거래에서도 빠르게 면허증 등 대체 수단을 사용해 피해 발생이 크지 않다고 한다. 자기들이 친 사고에는 피해가 없다고 하니 국민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창구 공무원들은 얼마나 패닉 상태였겠는가? 민원인의 고충은 또 얼마나 컸겠는가?
이번 사태는 디지털 강자인 우리 국민들에게 큰 모멸감을 줬다. 어린 손님들을 잘 보살펴주고 싶어 했던 마음을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날려버렸듯이 말이다. 총리가 새만금의 화장실을 살펴봤던 마음과 각오로 돌아가야 한다. 화장실은 잘 보이지만 전산망은 국민들에게 보이지 않으니 더욱더 그렇다.
사고 후 복원 능력을 나타내는 회복탄력성뿐 아니라 사전 탐지, 효율 운영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소위 리질리언스(resilience) 역량도 점검해야 한다.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와 같은 active-active-active…로의 n중화의 도입, 민간부문 전문성에 입각한 제3자 스트레스테스트와 모니터링 구조화 등 혁신적인 업그레이드를 모색해야 한다.
정부와 공직자들이 국민에게 겸손한 마음을 갖고 전산망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부의 각종 인프라를 면밀히 살피고 보다 정직하게 대안을 수용하는 담대한 계기로 삼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