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국내 첫 뮤추얼펀드인 일명 '박현주 펀드를 비롯해 매니저 이름을 앞세운 각종 펀드 시리즈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요. 영화 '빅쇼트'나 '작전', '부산행' 속 펀드매니저를 연기한 배우들의 모습으로 미뤄 예민하고 논리적인 냉혈한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요즘의 펀드 시장은 사실상 상장지수펀드(ETF)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운용역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영화에서처럼 저녁마다 폭탄주를 마시고 상류층의 '검은 돈'을 도맡아 관리하는 억대 연봉자일까요?ETF를 액티브하게 굴린다…김남호 타임폴리오운용 운용역글로벌 금융위기 때 겪은 '손실의 경험'은 투자자들에게 트라우마가 됐습니다. '제아무리 스타 펀드매니저라도 시장은 이길 수 없다'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ETF로의 주목도가 확 늘었습니다. 펀드를 잘못 골랐다가 손실을 보느니 차라리 시장 지수만큼의 성과라도 얻겠다는 겁니다.소극적으로 지수 수익률만을 쫓는다고 해서 이런 상품을 정확히는 '패시브 ETF'라고 합니다.
그럼 ETF 매니저들은 관리자의 영역에만 머무를까요? 치열한 전장에서 수익률 경쟁을 치르고 있는 ETF 매니저들이 들으면 섭섭할 소리입니다. 지수 성과를 추종하되 알파를 추구하는 '액티브 ETF'가 수년 사이 활발히 나오고 있기 때문인데요. 매니저가 포트폴리오에서 많게는 절반을 다른 종목으로 채워넣는 등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매하죠. 국내 상장 ETF 총 800여개 중 20% 이상이 이런 액티브 ETF입니다. 액티브 ETF 매니저들은 과거 강자 '액티브 펀드 매니저'와 현재 강자 '패시브 ETF' 매니저의 특징을 반씩 넘겨받은 듯한 인상입니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신생시장 수준인 이 액티브 ETF가 향후 전체 펀드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펀드계 새로운 얼굴이 될지 모를 이들 액티브 ETF 매니저들은 열차 시간표처럼 정확하게 쪼개진 시간 속에서 여의도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지난주 첫 거래일이었던 월요일(11월 27일) 액티브 ETF 명가(名家)로 떠오른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김남호 ETF본부 차장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습니다.
김 차장은 한 우물만 9년을 판 이 분야 전문가입니다. 2014년 12월 한화자산운용 입사와 동시에 ETF 부문에 배정된 그는 이 곳에서 6년간 패시브 ETF의 전략과 운용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타임폴리오운용에는 2년 전 1월 합류했습니다. 기존의 패시브 운용에서 액티브 운용으로 방향성을 틀고자 한 도전의식이 이직의 계기였습니다.
액티브 ETF 매니저는 종일 뭘 할까? 직접 따라다녀 보니◇오전 6시40분. 김 차장이 사무실로 들어섭니다. 전사 회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잽싸게 커피를 탄 뒤 수첩을 챙겨 회의실로 직행합니다. 전사 회의는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데 김 차장이 속한 ETF본부뿐 아니라 주식·부동산·운용지원·마케팅 등 각 본부 팀장급 이상이 모여 그 주의 전략을 논의합니다.
회의가 끝나고 김 차장은 큰 모니터 6대가 놓인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여기에서 첫 반전이 나오는데요. 방대한 리서치 자료들로 책상 대부분의 면적이 뒤덮여있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깔끔하고 정리된 책상. 그리고 책상 옆 선반에는 마그네슘·밀크씨슬 영양제 등 눈과 간을 보호하는 건강 보조 식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요.
김 차장은 업무에 본격 들어가기 위해 안경을 썼습니다. 메일함을 들어가보니 약 30~50통이 와 있습니다. 40~50장 되는 긴 리포트들은 하루에 걸쳐서 꼼꼼히 확인하고 막간을 활용해선 짧은 종목 리포트를 10여개 빠르게 훑어봅니다.
◇개장을 45분 앞둔 8시 15분. 그는 글로벌 인공지능과 미국 나스닥100 등 액티브 ETF 4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자체 운용지원 시스템인 TMS를 통해 오늘 매매하기로 정해둔 종목들에 대한 주문을 차례대로 입력했습니다. 예컨대 김 차장이 어느 ETF에 담긴 A종목의 비중을 1% 만큼 매도하고자 하면 해당 종목란에 '마이너스(-)1%'을 입력하면 됩니다.
시작가가 바뀌기 직전인 8시45분 전까지는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이런 매매 입력 업무는 통상 정기 변경일을 제외하고는 매매를 하지 않는 '패시브 ETF'와 비교되는 가장 큰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매매가 이뤄지는 시간은 항상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10분 사이로 설정합니다. 개장시간인 9시에 딱 맞추지 않는 이유는 LP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겁니다. 장 시작하자마자 주문을 넣으면 LP들은 헤지(위험 노출 회피)를 하기 위해 해당 종목을 차입해서 매도해야 하는데, 차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만큼 1시간의 여유를 준 것이라고 김 차장은 설명했습니다. 또 3시10분까지로 제한을 둔 것은 3시20분부터 동시호가인 만큼 이 시간대는 종목 가격이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업종·종목 두고 열띤 토론…"액티브 매니저들 답네"◇오전 9시. 장이 열렸습니다. 체결률은 오전 10시부터 1%, 2%로 점점 올라가기 시작할텐데요. 매도를 낸 종목은 특히 꼼꼼하게 봅니다. 주가 내려갈 때 팔면 계획 만큼 비중은 줄어도 수익률이 악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올라갈 때 팔아야 합니다. 이렇게 매도한 종목이 다음 날 상한가를 갈 때면 매수한 종목이 빠질 때보다 더 가슴 아프다고 하네요.
◇오전 9시30분. 본부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각자 맡은 펀드에 대해 지난 한 주의 운용 성과를 공유하고 이번 한 주는 어떤 식으로 운용할 것인지 간략히 보고하는 자리입니다. 운용 상품들의 투자지역이 한국과 미국인 만큼 이들은 국내외 사정을 두루 섭렵한 뒤 회의에 임해야 합니다. 액티브 ETF 운용역들뿐인 만큼 회의 내용의 전반이 국내외 종목 이벤트 이야기였습니다.
농담이 오갈 만큼 분위기는 가벼웠지만 개별 발표가 시작되자 다섯 운용역들의 표정에는 사뭇 진지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리더인 김남의 ETF본부장이 먼저 운을 뗐습니다. "시장은 관망하는 중인데 리노공업과 두산로보틱스를 1%씩은 담아뒀기 때문에 덕을 보고 있긴 하나 너무 미비합니다. 상장 이후 초과 성과가 5% 밑으로 내려왔는데 최선을 다해 올릴 예정입니다."
이날 회의의 최대 이슈는 '온디바이스'(On-Device)였습니다. 김남호 차장은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BBIG) 종목들 위주의 이노베이션액티브 ETF에 대한 PDF 변경 계획을 공유했습니. "온디바이스 종목들이 핫한 만큼 새로 담을 예정입니다. 또 최근 많이 오른 게 비트코인 관련주인 컴투스·위메이드·우리기술투자 등 세 개 주식인 만큼 비중을 기존에서 좀 더 올리려고 합니다."
이어서 발표한 이정욱 부장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도 뜬금없이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시세가 크게 반응했습니다. 투자자들이 온디바이스에서도 비슷한 기대감을 갖는 듯합니다. 리노공업·오픈엣지테크놀로지·가온칩스 등 관련주들을 잘 매매하면 알파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주주 이슈도 없어서 부담이 적습니다."
◇오전 10시. 부서 회의가 끝났습니다. 김 차장은 자리로 돌아와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이제부터는 10시부터 주문이 들어가게끔 입력했던 주문 정보가 제대로 체결되고 있는지 살펴볼 시간입니다. 펀드 속 종목들의 실시간 등락률을 살펴가며 혹여 종목별 큰 이벤트가 생기거나 급등락이 연출될 경우 바로 주문 입력해가며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일하는 건데요!"…네이트온으로 LP들과 수시로 시장 대응◇오전 11시. 대한민국 어디보다 빠른 여의도답게 이른 점심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약속 없이 회사에서 식사할 사람들을 위해 메뉴를 통일해 회사에서 점심을 주문해 준다고 하네요. 따로 혹은 같이 탕비실이나 회의실에서 먹으면 됩니다. 점심 메뉴는 전사 공식 소통 채널인 텔레그램에 매일 올라옵니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들면 밖에서 사먹어도 되는데 법인카드로 지원이 된다고 합니다.
이날은 김 차장이 SK증권의 LP 담당 직원인 박 과장과 약속이 있는 날입니다. 두 사람은 SK증권 빌딩 지하 미역국 집에서 만났고 기자도 동행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일 얘기는 전혀 안 할 것"이라며 너스레를 놓았지만 결국 대화의 주된 메뉴는 업무와 시장 이야기였습니다. 신상품 ETF 종목 구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든가 회사 안팎 이슈 중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시장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아는 게 부족한 기자로선 옆에서 열심히 거들면서 미역국만 떠먹었습니다.
사회에는 밥값을 내는 자가 부탁하는 처지에 있을 것이란 암묵적인 관행이 있습니다. LP와 운용역이 만나면 누가 지갑을 열까요? 일반적으로는 파생 브로커 기반의 증권사 직원들이 주로 밥을 샀지만 설정 자격이 있는 LP 역할이 더해지면서는 거의 '반반'에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상생관계인 만큼 서로 간에 수직구조를 만들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죠. "어차피 매일 소통하다보면 서로 친해져서 결국 나이 많은 사람이 산다"면서 김 차장은 웃었습니다.
◇LP들과 시장에 대응하다보니 어느덧 오후 2시30분이 됐습니다. 한국투자증권과의 온라인 세미나가 있습니다. 타임폴리오운용 상품의 LP 중 한 곳인 한국투자증권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인 건데요. 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선 주기적으로 특정 종목들에 대한 분석이나 미국 시장에 대한 시황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점심 상대도 LP, 세미나 제공 상대도 LP…김 차장은 하루의 대부분을 LP와 소통합니다. 투자자들이 종목을 사거나 팔고 싶을 때 원하는 수량만큼을 적정 가치에 매매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을 '유동성'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운용사와 별도 계약을 맺은 증권사, 즉 LP들입니다. LP는 유동성이 적은 종목에 매매 호가를 내서 투자자들의 매매 거래가 원활하도록 돕습니다. 또 ETF의 시장가기 실제가치와 괴리가 생기지 않도록 상시 그 근처에서 호가를 제출합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는 김 차장. 그를 관찰할 때면 항상 메신저 '네이트온'을 통해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요. 알고보니 LP들과 연락하면서 열심히 시장을 모니터링 중인 것이었습니다. 김 차장이 주식 대여를 해준 LP에게 연락해 상환을 요구한다든가, ETF를 다 판 LP 측에서 김 차장에게 신규 설정을 하겠다고 말한다든가 대화 내용은 다양했습니다.
오가는 메신저 대화를 보니 또 반전이었습니다. 촌음을 다투는 반말과 고성이 오갔다던 과거 증권가 후일담과 달리 김 차장은 내내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자주 점심과 저녁을 함께하다 보니 개인적인 친분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어디까지나 운용사와 LP의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선을 지켜줘야 한다"는 게 김 차장의 설명입니다. 아직도 네이트온을 쓰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차장은 "이마저도 과거 '미스리'(메신저 서비스)에서 넘어온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여의도 안에서도 업권마다, 기업마다 자주 쓰는 메신저가 다른 것도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장 끝나면 내일 변경분 확정…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오후 3시30분. 장이 끝났습니다. 매매 입력했던 종목별로 몇주가 얼마에 체결됐는지 확인합니다. 지금부터는 내일 매매 입력할 종목들을 고민한 뒤 각 ETF의 자산구성내역(PDF)에 변경분을 미리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예탁결제원 시스템에선 이날 오후 9~10시께 변경분을 확정합니다. 이렇게 전날 매매 종목과 주수를 정하는 식이라면 당일 사기로 결정한 것은 못사냐고요?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꼭 사야할 게 생기면 LP들에게 주문 메시지를 보내고 당일에라도 매수를 한다고 합니다.
이날 김 차장은 반도체 비중을 줄이고 온디바이스 비중을 새로 취했습니다. 그는 "TIMEFOLIO 글로벌AI인공지능액티브 ETF에서 오픈엣지테크놀로지와 가온칩스 등 온디바이스 AI 관련주 매매를 통해 비중을 올렸고 한미반도체와 하나마이크론 등 반도체의 비중은 낮췄다"며 "반도체 섹터를 안 좋게 봐서 비중을 낮춘 것은 아니지만 온디바이스 AI 종목을 매매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반도체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후 5시. 매매 입력을 끝낸 뒤 김 차장은 나갈 채비를 합니다. DB자산운용 글로벌 자산배분 담당자를 만나 추후 신상품 관련해서 아이디어를 얻기로 했습니다.
원체 술과 술자리를 좋아했던 김 차장이지만 액티브 매니저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음주량을 크게 줄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또한 영화로만 펀드매니저의 일상을 배운 기자의 고정관념을 깼습니다. 기관투자자와의 '폭탄주' 저녁식사가 거의 매일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김 차장은 "그럴 일 전혀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폭탄주는커녕 가벼운 술조차 요즘에는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시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김 차장은 LP 등과의 저녁 업무미팅이 잡혀있지 않는 날에는 못다 읽은 종목이나 시황 리포트를 읽다가 퇴근한다고 합니다.
일하는 내내 모니터를 들여다봐서인지 눈이 반쯤 잠겨있습니다. 김 차장은 뻑뻑한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해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회사 문을 나섰습니다.
"흔히들 펀드매니저를 이야기하면 억대 연봉을 연상할텐데요. 물론 돈도 중요하지만 사명감에서 오는 기쁨도 적지 않아요. 직접 시장과 겨뤄가며 투자자들께 초과 성과를 안겨다준다는 건 짜릿한 일이거든요. 여기에서 오는 긴장감과 뿌듯함이 피곤함을 이기는 것 같아요. 내일 하루도 열심히 살아봐야죠."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