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에 따라 2050년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상승하지 못하도록 막는 비용이 편익보다 9배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탄소중립 정책을 무리하게 실현하기보다는 저탄소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게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리처드 톨 영국 서섹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달 기후변화경제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톨 교수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 효과를 분석한 논문 39편과 피해를 추정한 논문 61편을 분석한 결과 파리협정을 준수한다면 2050년까지 연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0.5%가 손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GDP의 4.5%가 비용으로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2100년까지 파리협정을 지키면 GDP 손실 3.1%를 예방하고 5.5%가 비용으로 들어간다.
파리협정은 2015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195개국이 채택한 협정이다.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평균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논문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전제로 작성됐다.
다만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비용은 톨 교수의 추정치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톨 교수는 세계 각국 정부가 일률적으로 탄소세를 인상하는 등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전제했지만, 실제 정책은 더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저마다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해 실제 탄소 배출 감축 효과보다 더 큰 비용을 쓰는 게 대표적인 예다. 같은 달 이 저널에 게재된 제니퍼 모리스, 헨리 첸 등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의 결과는 더 비관적이다. 이들은 2050년까지 파리협정을 준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연간 GDP의 8~18%, 2100년까지는 11~13%로 추산하고 있다.
두 논문이 내놓은 2100년까지 파리협정 준수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평균 내면 연간 27조달러(약 3경4870조원)가 소요되고, 4조5000억달러(약 5230조원)의 이익이 창출된다. 1달러를 지출할 때 17센트만큼의 혜택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막대한 정책 비용은 세계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MIT 연구진은 경고했다. 이들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2030~2060년 세계 소비가 15%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또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탄소중립을 일찍 달성한 국가와 그 외 개발도상국 간 정치적 갈등도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MIT 연구진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 파리협정을 고수하기보다 저탄소·친환경 기술 연구개발(R&D)에 예산을 집중하는 게 낫다고 제언했다. 이들은 2014년 코펜하겐컨센선스센터 보고서를 인용해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가 파리협정 실현보다 66배 효과적인 데다 비용은 1~10%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30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 도입이 공식 승인됐다. 이 기금은 개도국들이 기후 변화로 입은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수억달러 규모로 조성하는 최초의 펀드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