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전셋값이 심상치 않다. 6700여가구에 달하는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입주하면서다. 공급 폭탄에도 계속 오르던 전셋값은 사전점검 이후 고꾸라졌다. 입주 날짜가 다가오면서 마음이 급해진 집주인들이 가격을 낮추면서다. 예정됐던 입주일이 밀린 점, 입주 시기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등과 맞물린 점도 전셋값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단 설명이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디에이치 퍼스트 아이파크 전용 84㎡ 전셋값은 12억~14억원에 형성됐다. 사전점검 이전 15억원까지 올랐던 전셋값은 입주가 임박하며 한 달 새 많게는 3억원가량 떨어졌다. 현재 이 단지에 나와 있는 전세 물건은 2700여개, 반전세를 비롯한 월세는 2400여개에 달한다. 전체 가구 수(6702가구)의 70% 이상이 전·월세로 나와 있는 셈이다.
워낙 대단지다보니 나눠서 살펴보면 단지 내 근린공원을 중심으로 1획지와 2획지로 나뉜다. 보통 수도권 지하철 수인분당선 구룡역과 가까운 1획지 내 전용 84㎡는 전셋값이 14억원부터 시작하고 양재대로와 구룡산과 가까운 2획지는 13억원을 기준으로 낮게는 11억원대 물건도 나와 있는 상황이다.
학군도 전셋값을 가르는 요인이다. 1획지 거주민 배정 학교인 서울개원초등학교는 당장 내년 3월 개교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높게 형성돼 있다. 다만 2획지는 개원2초(가칭)로 배정되는데 현재 학교 부지 내 토사 반출 지연과 서울시 하수관로 점용에 따른 대토 문제로 내년 8월에야 개교가 가능하다. 2획지 거주 학생은 임시로 개원초로 등하교 한 뒤 이후 개원2초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개포동 A 부동산 공인중개 대표는 "가격이 높은 것은 18억원까지도 나와있지만 거래가 이뤄지는 가격대는 13억원 안팎"이라며 "14억원대만 들어서도 실수요자들이 찾지 않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전셋값은 입주장을 맞아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빠른 기간 내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급 폭탄'을 소화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학군이다.
개포동 B 공인중개 대표는 "집을 보러오는 손님 중 80~90%가 학부모들이다. 신축 초·중등학교가 단지 내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라며 "아이들 학교 때문에 며칠 전 분당에서도 학부모가 집을 보고 갔다"고 설명했다.
인근에 있는 C 공인중개 관계자는 "현재 2획지 쪽으로는 낮게는 11억원대에도 전세 물건이 나와 있는데 11억~12억원에 형성된 전세 물건은 상당이 가격이 낮은 매물"이라면서 "당장은 수능과 입주 지연 등 이슈 때문에 조용하지만 학군 이동이 활발한 내년 초부터는 이런 매물은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전셋값 하락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낙 공급 물량이 많고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단지 인근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현 상황으로서는 부진한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 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면서 "시장 분위기가 꺾였고, 수능과 함께 입주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불거졌기 때문에 물량을 소화하는 데까진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한편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개포주공아파트 1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다. 시공사는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다. 지난 10월 강남구청은 주거시설과 부대 복리시설 공사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준공인가신청 처리 불가 결정을 내렸다. 입주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개포주공1 재건축조합은 힘겹게 임시사용승인을 받아 당초 입주 예정일인 같은 달 30일 정상 입주 절차를 밟았다. 임시사용승인 기간은 2025년 11월28일까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