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이 한국에 조성됐다. 판매·구매자가 온라인에서 24시간 거래하는 전국 단위 시장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온라인도매시장 거래액을 전체 도매시장의 20%에 해당하는 3조7000억원 규모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3~4단계에 달하던 복잡한 유통 단계가 단축되면서 불필요한 비용이 줄고, 농산물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농산물 유통단계 단축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30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농식품부 주최로 열린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출범식에서 “온라인에 또 하나의 가락시장을 만든다는 목표로 온라인도매시장을 2027년까지 3조7000억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농산물 유통의 디지털 혁신’을 대표하는 핵심 과제다. 지난 2월 농식품부가 민관 합동 개설작업반을 구성해 준비에 나선 지 10개월 만에 공식 개장했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전국 농산물의 ‘허브’ 역할을 하는 도매시장 기능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겼다. 전국의 다양한 판매자와 구매자가 자유롭게 농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유통구조가 복잡한 농산물 도매시장을 온라인에 구현한 것은 세계 첫 사례라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이로써 약 40년간 이어진 오프라인도매시장 중심의 유통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농가→산지 유통인→도매시장(도매법인·중도매인)→소매업체→소비자로 이어지는 전통적 구조에서 판매자(공판장·도매시장법인·산지출하조직)→구매자(중도매인·식자재마트·가공업체)→소비자로 단순해진다. 마트(소매업체)의 경우 전국 생산자의 상품을 검색해 산지에서 직접 공급받을 수 있다. 유통단계마다 붙었던 수수료와 운송료가 줄어들고 도매시장 간 칸막이도 사라지게 됐다. ○중간 비용 줄어 농가소득도↑외식업체 더본코리아는 이날 시장 출범을 기념해 1호 거래자로 나서 전남 무안에 있는 전남서남부채소농협으로부터 양파 10t을 구매했다. 서남부농협은 산지에서 양파 선별 과정을 마친 뒤 도매시장이나 중도매인을 거치지 않고 충북 음성의 더본코리아 전처리센터로 직배송할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온라인도매시장이 농가 소득은 높이고 농산물 물가는 안정화하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한 달간 시행한 파일럿 사업 111건의 거래를 분석한 결과 온라인 거래는 오프라인 거래에 비해 농가 수취가격을 4.1% 높이고 소매단계 구매가격은 3.4%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 경로 단축으로 농가가 부담해오던 수수료와 운송비가 각각 30% 이상 감소해 전체 유통 비용이 7.4% 줄어든 결과다.
정부는 온라인도매시장이 활성화되면 2027년엔 연간 7000억원의 유통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장관은 “유통 비용 절감의 혜택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통 현장에서는 온라인도매시장이 오프라인시장을 대체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오프라인시장에서는 중도매인이 직접 눈으로 품질을 점검해 매입하지만, 온라인에서는 품질 확인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농가에서 고품질 농산물을 공급해주지 못하면 유통업체가 선별 작업을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 단계에서 비용이 되레 추가될 수 있다”며 “대량 생산이 가능한 농가를 발굴하는 것도 바이어들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한경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