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수주 전 "땅부터 사라"…에어퍼스트 키운 IMM의 역발상[PEF 밸류업 사례탐구]

입력 2023-11-30 14:08
수정 2023-11-30 18:29
이 기사는 11월 30일 14:0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계약 체결 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거래를 종결하겠습니다."

송인준 IMM프라이빗에쿼티(PE) 사장은 2019년 초 산업가스업체 에어퍼스트(당시 린데코리아)를 매각하는 독일 린데그룹을 찾아가 이 같은 의사를 전했다. 당시 린데그룹은 에어퍼스트 공개 매각을 진행 중이었다. 맥쿼리PE 등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경쟁을 벌이던 IMM PE는 패색이 짙었다. 자본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IMM PE는 포기하지 않았다. 린데그룹이 미국 프렉스에어를 합병하며 독과점 우려가 커진 탓에 에어퍼스트를 강제 매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집중했다. 린데그룹은 무엇보다 반드시 딜을 마무리해줄 원매자를 찾고 있었다. 송 대표의 '벼랑 끝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예비입찰과 본입찰, 몇 차례 프로그레시브딜(경매호가식 입찰) 끝에 린데그룹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결국 IMM PE였다. 당시 에어퍼스트 인수 업무를 담당했던 유헌석 IMM PE 전무는 "에어퍼스트 인수에 IMM PE의 모든 걸 걸었었다"고 회상했다.

PEF의 밸류업 전략은 좋은 매물을 싸게 사는 데서 시작한다. IMM PE는 특수 상황에서 매물로 나온 에어퍼스트의 주력 사업인 산업용 가스 산업 자체를 매력적으로 봤다. 송 사장은 산업용 가스를 '테프라(테크+인프라)'라는 새로운 산업으로 정의했다. 안정적인 인프라 성격과 성장성을 갖춘 기술 기반 산업의 특성이 혼합된 산업이라는 의미다. 유 전무는 "산업용 가스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화학, 철강 공장 가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며 "'반·디·철·화'를 기반으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는 만큼 산업용 가스 시장도 성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쉽게 표현하면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에어퍼스트는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장기적 성장 위해 핵심 기능 내재화우여곡절 끝에 에어퍼스트를 품은 IMM PE는 곧바로 밸류업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영업, 재무, 인사 등 회사의 핵심 조직 역량을 확인했다. 조직 역량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에어퍼스트는 린데의 한국 사업부였던 만큼 각 분야의 핵심 기능과 인력은 린데 본사에 있었다. 린데 본사와 계약을 맺고 계속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IMM PE는 린데와의 이별을 택했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핵심적인 기능은 내재화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을 내린 IMM PE는 우선 우수한 설계 인력부터 대거 뽑았다. 영업 조직이 수주해 온 신규 일감을 소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설계 조직 정비가 중요했다. 영업 조직 재정비와 리더십 보강도 필요했다. IMM PE는 이를 위해 린데코리아를 이끌던 양한용 사장을 삼고초려했다. 양 사장은 영업과 생산을 아우르며 빠르게 조직을 안정적으로 정비했다.

유 전무는 "린데코리아 시절 린데그룹 글로벌 법인에 흩어져 있던 핵심 기능을 내재화하고, 부서 간 장벽을 없애자 시너지가 나기 시작했다"며 "카브아웃 딜에선 무엇보다 빠른 조직 재정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에어퍼스트가 가장 큰 고객사 중 한 곳인 삼성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밸류업의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3공장의 산업용 가스를 누가 공급할 것이냐는 당시 업계의 가장 큰 화제였다. 1공장과 2공장은 모두 글로벌 업체에서 가스 공급을 맡고 있었다. IMM PE는 경쟁자와 다른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IMM PE는 3공장 근처에 수만 평에 달하는 땅을 샀다. 수주에 성공하기도 전에 산업용 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부지부터 확보했다. 업계에선 "미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송 사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수주 실패로 손해가 발생하면 주주사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결국 송 사장의 베팅은 통했다. 산업용 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삼성전자는 부지를 먼저 확보한 에어퍼스트에 일감을 줬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4공장의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5·6공장도 추가로 건립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눈도장을 받은 에어퍼스트의 수주 실적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사 확대하며 3년 만에 매출 두 배 급증IMM PE가 에어퍼스트를 품은 첫해인 2019년 2689억원에 그쳤던 에어퍼스트 매출은 지난해 6031억원으로 늘었다. 3년 만에 매출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043억원에서 1420억원으로 36.1% 증가했다.

가파른 실적 상승세를 앞세워 IMM PE는 지난 6월 에어퍼스트 지분 30%를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1조1000억원에 매각했다. 2019년 인수 당시 지분 100% 기준 1조3000억원이었던 기업 가치는 3조7000억원으로 커졌다. 투자한 지 4년여 만에 지분 30%만 팔고도 투자 원금을 대부분 회수했다. 소수지분만 매각하고도 내부수익률(IRR) 39%를 기록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IMM PE가 에어퍼스트 투자 유치를 추진할 때 일부 후보들은 더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하고,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IMM PE는 당장의 회수 성과보단 다시 한번 에어퍼스트의 미래에 베팅했다.

유 전무는 "소수지분만 매각한 이유는 솔직한 말로 에어퍼스트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라며 "성장성과 수익성, 안정성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포트폴리오인 만큼 IMM PE가 주도적으로 경영하며 기업 가치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MM PE 내부에선 "에어퍼스트를 발판 삼아 IMM PE가 대형 바이아웃 펀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에어퍼스트는 IMM PE를 토종 대형 PEF로서 자리매김시킨 첫 '조 단위 딜'이기 때문이다. IMM PE의 밸류업 레벨을 끌어올린 딜이기도 하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