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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Fed) 내 대표적인 매파(통화긴축 선호) 인사가 기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의 발언 이후 미 달러화 가치는 3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국채도 최근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따라 촉발됐던 폭락세 이전으로 회복됐다.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미국기업연구소(AEI)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현 금리 수준은 인플레이션 대응에 적절하다"면서 "물가상승세가 앞으로도 몇달 간 개선된다면 그 추세 만으로 기준 금리를 인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는 연 5.25%~5.5%이다. 이날 6개 주요국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는 0.5% 하락해 지난 8월 중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서 거래됐다.
월러 이사는 "현재 통화정책이 경제 과열을 식히고 물가상승률을 2% 목표로 되돌리기에 적절하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러 이사는 "향후 경제활동 추세에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물가안정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면서도 "앞으로 3개월이 될지 5개월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컨대 디스인플레이션이 몇달 간 더 지속된다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도달했는데도 금리를 계속 높게 유지하겠다고 말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3.2%를 기록했다. 연간상승률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해 6월(9.1%)에 비해 대폭 안정화됐다. 이 같은 개선 지표에도 불구하고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최근 "지금으로선 전혀 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투자자들은 내년 5월부터 통화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날 월러 이사의 발언은 투자자들의 전망과 일치하는 것이다.
월러 이사는 앞서 '무언가는 포기해야 할 때(Something's Got to Give)'라는 제목의 공개 연설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경제 성장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그는 당시 언급과 관련해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알게된 사실에 고무돼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경제의 속도"라면서 "10월의 데이터는 경제 활동의 둔화를 보여줬고 4분기 경제 성장률 전망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우리의 진전과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날 월러 이사의 발언을 소화한 외환 시장에서는 달러화가 11월 초 이후 3.6% 하락하며 1년 만에 최악의 월간 실적을 보이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0.04%포인트 하락한 연 4.35%를 기록했다. 앞서 9월 FOMC 회의 이후 전 세계 채권 시장에서는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따라 채권 투매세(채권 폭락,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은 폭등)가 촉발된 바 있는데, 이날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그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금리 전망에 특히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연 4.75%까지 떨어져 8월 10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마지막 FOMC는 12월 12~13일로 예정돼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또 다시 금리 동결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Fed 내에서는 매파적인 목소리도 여전하다. 가장 매파적 인사로 꼽히는 미셸 보먼 이사는 이날 유타주 은행연합회 행사에서 "물가상승률을 목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월러 이사와 보먼 이사의 발언은 FOMC 회의를 앞두고 Fed의 공개 의사 표시가 제한되기 전 마지막 날에 나온 것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