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입직 8년 차인 A사무관은 명문대를 졸업한 후 5급 일반직 공채(행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당초 A사무관은 입직 후 10년만 지나면 국외훈련 과정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은 해외 유학을 다녀올 수 있는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A씨의 고민이다.
유학이나 국제기구 근무 등 공무원 국외훈련은 6개월 미만의 단기와 1년 이상의 장기 훈련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원하는 건 장기 국외훈련이다. 해외에서 국비 지원을 받으면서 석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공무원 국외 장기훈련 신청 자격은 만 48세 이하로, 근무경력(군경력 제외)이 3년 이상인 4급 이하 공무원이 대상이다.
문제는 기재부처럼 인사 적체가 심한 부서는 국외훈련 과정에 선발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뿐 아니라 어린 연차의 사무관들에겐 기회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A사무관은 “국장급 상사들이 본인들은 입직 후 5년 만에 유학을 다녀왔다거나 해외 생활을 너무 자주해서 또 나가기 지겹다고 말할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진다”며 “서기관 승진 후에나 국외훈련 신청이 가능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공무원 인사관리 주무 부처인 인사혁신처는 내년도 장·단기 국외훈련 예산으로 356억4600만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작년 대비 23억9000만원이 증액됐다. 증액된 사업은 내년부터 신규 도입되는 청년세대 장기 국외훈련 과정에 소요될 예산이었다. 인사처는 젊은 엘리트 MZ 공무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30대 초반의 입직 5년 차 안팎의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해외 유학 기회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예산은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전액 삭감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동민·김승원·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규로 도입되는 청년세대 장기국외훈련 과정은 신규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고연령 신규채용자는 대상에서 제외돼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액 삭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달곤·송언석 국민의 힘 의원은 예결소위에서 청년 세대 공무원들에게 국외훈련 기회를 부여해 우수한 청년 인재 역량을 개발하고 공직사회 전반의 활력 제고를 위해 원안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과 송 의원은 행정안전부 장관과 기재부 차관을 지냈다.
다만 야당이 전액 삭감을 주장하고 있어 해당 사업 예산이 정부 원안대로 복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는 점도 전액 예산 삭감에 무게가 실리는 또 다른 이유다.
MZ 공무원들 사이에선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과 함께 아쉬워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실제로 일부 부처 인사과는 내년에 청년세대 장기 국외훈련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해 사전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후보자를 추려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처 인사과 관계자는 “24억원의 예산이 증액되면 주요 부처별로 1~2명의 청년 사무관들의 티오(TO·정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선 유학이나 해외 근무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3~4급 공무원 관련 국외훈련 예산을 줄여서라도 청년세대에 대한 장기 국외훈련 과정 예산을 복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제부처 사무관은 “국장이나 고참 과장들의 경우 유학과 대사관 및 국제기구까지 합치면 세 번 이상 해외 주재 경험을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 인사처가 올린 국제기구 고용휴직 제도운영 예산은 올해보다 54억원 증액된 324억3500만원으로 편성됐다.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특별한 반대가 없어서 정부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휴직 제도는 3~4급 공무원들이 대상이다. 인사처는 고용휴직 직위 신설 및 단가 현실화를 통해 증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