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호주에서 농장주들이 양들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고 합니다. 양 사육두수가 기록적으로 늘어나며 양 가격이 폭락해서인데요. 비용을 들여 양을 키워도 손해를 보고 팔자 농장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양을 방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농부가 한두 명이 아니어서, 공짜 양마저 데려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지난번에는 호주에서 소 가격이 9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농업 선진국 호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양 사육두수 16년만 최고25일(현지시간) 호주축산공사(MLA)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성체 양(머튼·mutton) 가격은 kg당 약 1.56호주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연초 4.55호주달러 대비 약 66% 하락했습니다. 최근 반등했지만 지난 19일에만 해도 kg당 가격은 1.24달러선이었습니다.
대중에게 보다 익숙한 명칭인 램(lamb)은 생후 1년 이하의 어린 양을, 머튼은 생후 1년 6개월 정도 지난 성체 양을 의미합니다. 머튼 특유의 누린내가 있지만 램은 냄새가 거의 없고 육질이 부드러워, 한국인들은 램을 선호하지요. 램 가격은 머튼보다는 하락폭이 크지 않았지만 역시 연초보다 40% 떨어졌습니다.
올해 전까지 지난 3년간 호주의 날씨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뉴사우스웨일즈, 빅토리아 등 호주의 양 재배지역에서 3년간 강우량이 평년 이상을 기록하면서 양과 소 등 가축에 먹일 풀이 쑥쑥 자랐습니다. 양을 기를 여건이 좋아지자 양을 키우는 농가들이 급증했습니다. MLA에 따르면 올해 호주의 양 사육두수는 7875만마리로, 2007년 이후 16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문제는 이상기후였습니다. 올 들어 호주를 엘니뇨가 덮치며 목초지가 가뭄에 타들어갔습니다. 농장들은 대규모 양떼를 먹이려 이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양들을 이끌고 다녀야 했고, 사육비가 치솟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주 기상청은 이달 “엘니뇨가 (향후 몇 달간)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견디지 못한 농장주들이 양들을 도축장으로 대거 보내면서 양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앤드류 스펜서 호주 양생산자협회 회장은 CNBC에 메일을 보내 “시장의 호황이 길어지자 농가들이 진작 팔아버렸어야 하는 양을 오래 키우면서 수가 늘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높은 도매가를 유지하고 싶은 농부들이 도축장에 내놓는 양떼 수를 조절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CNBC는 “(지금은) 판로가 없어 많은 농장주들이 양들을 살처분할 수도 있다”고 썼습니다.
○글로벌 양고기 가격 폭락하나호주의 양 공급 과잉은 글로벌 양고기 가격을 끌어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호주는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 2위 양고기 수출국입니다. 호주 당국은 올해와 내년 양 도축이 급증하면서 뉴질랜드를 제치고 세계 1위 양고기 수출국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MLA는 지난달 램 수출량이 3만604t으로 전년 동월 대비 17%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머튼 수출은 2만197t으로 같은 기간 무려 51% 늘었습니다. 전달인 9월 대비로도 23% 증가했습니다. 합치면 5만801t으로 사상 최대치입니다. ‘양꼬치의 나라’ 중국이 호주의 머튼 최대 수입국입니다. 지난달 머튼 수출량은 1만195t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 뛰었습니다. 전체 머튼 수출의 반 이상입니다.
MLA의 수석 시장 정보분석가 리플리 앳킨슨은 올해 양 도축 수가 2260만마리로 전년 대비 2.7% 증가할 것이며, 내년은 2320만마리로 역대 최대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양고기 도매가의 하락세는 이제 호주의 식탁물가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호주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 울워스는최근 양고기 제품 가격을 20% 인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도매가보다 하락폭은 아직 훨씬 적습니다. 우리나라는 머튼보다 램 소비가 훨씬 많은 만큼 호주산 양고기 수입 가격이 폭락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다만 양고기 공급 과잉이 예상보다 빠르게 공급 부족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서오스트레일리아농민협회(WAFarmers) 관계자는 CNBC에 “농장주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예 양 교배를 시키지 않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저출생으로 양 개체 수가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