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했던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의 미국행(行) 비행기 탑승이 재개됐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다승왕’ 임진희(25) 등 톱 랭커 네 명이 한꺼번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도전에 나선다. 신지애와 이보미 후 사실상 명맥이 끊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도 송가은(22) 등 ‘한국의 젊은 피’가 수혈된다. 국내에서 검증받은 실력파 골퍼가 대거 뛰어드는 만큼 ‘K골프 전성시대’가 다시 열릴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임진희·이소미 “내친김에 수석까지”
오는 30일부터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의 매그놀리아 그로브GC에서 열리는 2023 LPGA투어 퀄리파잉(Q)시리즈에는 네 명의 한국 선수가 출격한다. 올 시즌 4승을 거둔 임진희와 투어 통산 5승 보유자 이소미(24)는 세계랭킹 75위 이내 선수 자격으로 본선에 직행했다. 성유진(23)과 홍정민(21)은 지난달 예선전을 거쳐 본선 진출 자격을 따냈다.
Q시리즈는 총 6라운드 108홀 경기로 열린다. 상위 20위에 들면 투어 출전권을 받아 내년에 안정적으로 LPGA투어 활동을 할 수 있다. 네 선수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향해 컨디션 정비에 나섰다. 홍정민이 지난 21일 가장 먼저 미국으로 향했고 곧이어 임진희, 이소미, 성유진이 출국했다.
이들이 Q시리즈 수석 합격의 명맥을 이어갈지도 관심거리다. LPGA투어에 Q시리즈가 도입된 이후 수석은 한국 선수들의 몫이었다. 2018년 이정은(27)이 수석으로 투어에 뛰어들었고 2021년 안나린, 지난해에는 유해란이 수석을 차지했다.
28일부터 일본 시즈오카현 가즈키GC에서 열리는 JLPGA투어 Q스쿨에는 송가은, 정지유(27), 안신애(33)가 나선다. 지난 3일 JLPGA투어 프로테스트 최종전에서는 송가은과 정지유가 합격해 회원 자격을 따냈다. JLPGA투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회원 자격을 따낸 뒤 참가해 시드를 획득해야 한다. 이들은 일본 진출을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2017년부터 JLPGA투어에서 활동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활동을 중단한 안신애도 복귀를 위해 Q스쿨에 출전한다. ○위기의 한국 여자골프 활력소 될까골프업계에선 실력파 선수가 대거 LPGA에 도전장을 내민 만큼 최근 2~3년 동안의 부진을 털어낼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만들어낸 우승 횟수는 2022년 4승, 올해 5승에 그쳤다. 15승을 거둔 2019년과 비교하면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그나마 양희영이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유해란이 신인왕을 수상한 것이 위안이었다.
전문가들은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절대 우위가 흔들린 이유 중 하나로 ‘젊은 피 수혈’이 잘 안된 걸 꼽는다. 과거에는 KLPGA투어에서 정상을 찍으면 LPGA에 도전하는 게 당연했다. 유소연 김세영 전인지 박성현 고진영 이정은이 그랬다. 이 덕분에 몇몇 선수가 주춤해도 KLPGA에서 검증받은 신인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렇게 ‘한국 전성시대’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대회 출전이 어려워지며 이런 흐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사이 KLPGA투어 대회 수가 늘어나고 상금도 커져 “한국에서도 먹고살 만한데 굳이 LPGA에 나설 필요가 있나”라는 ‘LPGA 회의론’이 선수들 사이에서 퍼졌다. 그렇게 2021년에는 안나린과 최혜진, 지난해에는 유해란이 홀로 도전하는 데 그쳤다. 이제 코로나19가 끝난 데다 LPGA가 상금을 크게 올려 다시 도전자들이 뛰어드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임진희는 “선수로 더 오래 활동하기 위해 미국 도전을 결심했다. 시드전에서 잘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이소미는 “1년 동안 준비했다. 좋은 성적으로 합격해 꼭 미국 무대에 진출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KLPGA 역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협회 관계자는 “해외에서 우리 선수들이 전하는 낭보가 국내 투어의 인기와 경쟁력을 함께 올리는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