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에 파견 나온 미국 마케팅 회사 직원인 에밀리(주인공)의 생일날 점심, 파리 토박이인 직장 선배가 특별한 곳으로 초대하겠다며 ‘페르 라셰즈’로 데려간다. 페르 라셰즈는 프레데리크 쇼팽, 오스카 와일드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묻힌 공동묘지다. 그리고 말한다. “생에 대해 생각하려면 죽음, 망각을 고찰해야 한다.”
한국에서 공동묘지는 우리 동네엔 절대 들어서면 안 될 대표적인 ‘님비’ 시설로 취급받지만 페르 라셰즈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파리의 명소다. 찬란했던 벨 에포크 시절 꿈을 찾아 파리로 몰려든 예술가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파리 공동묘지의 메시지‘빛의 도시’ 파리가 오랫동안 세계 여행자들이 가고 싶은 도시 1위로 꼽히는 이유는 크기 때문이 아니다. 파리의 매력은 공동묘지마저 관광명소로 바꿔놓는 고유의 문화 예술 콘텐츠에 있다. 최근 서울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핫한 도시’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한 역동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등 문화 콘텐츠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도시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인이 문화 예술 콘텐츠만은 아니다.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 잡은 실리콘밸리는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갖췄다. 혁신 콘텐츠다. 세계적인 도시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혁신이 일어나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도시의 3대 조건으로 ‘3T’를 들었다. 기술(Technology)·관용(Tolerance)·인재(Talent)가 그것이다.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을 갖춘 도시에 다양한 인재가 몰려들어 창의성이 싹트고, 기술이 발달하고 인재가 몰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논리다.
플로리다 교수의 이론은 동북아시아에서 서울의 경쟁 도시로 꼽혔던 홍콩의 몰락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홍콩은 오랜 기간 아시아의 중심지였다. 금융은 물론 무역, 교통, 관광,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하지만 2020년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중국의 규제 탓에 자유와 관용을 잃어버린 홍콩은 인재와 기업들이 빠져나가며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글로벌 도시 서울의 전략한때 세계 최대 규모였던 홍콩 기업공개(IPO) 시장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자금 조달 규모는 전년 대비 약 70% 급감했다. 중국 경제의 부진 탓도 있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헤드쿼터가 빠져나간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홍콩을 탈출한 기업과 세계적인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몰려가면서 싱가포르는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 금융 중심지로 떠올랐다.
세계 총생산의 70%가 도시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있다. 교통과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국경이 흐릿해지면서 앞으로 국가보다 도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총선을 앞두고 ‘메가시티’론에 불이 붙었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도시 서울의 경쟁력이 화두로 떠올랐다. 마침 서울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인재와 기업이 몰리는 글로벌 도시 서울을 키워내기 위한 전략의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몸집만 키워서는 도시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도시 경쟁력의 핵심은 콘텐츠와 인프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