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2일 10: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돈 주고 사용하는 유무형의 모든 제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소비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업자는 없다. 이토록 단순하고 단단한 진실은 그러나 ‘업자들의 사정‘으로 시나브로 순서가 밀리곤 한다. 원가의 절감, 생산의 효율, 유통의 마진이 사람보다 앞에 놓인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하다보면 괜찮다. 그래도 팔리니까. 수요와 공급의 수급 논리, 레거시로 굳어진 생산과 유통의 패권, 이 위에 쌓인 규제와 이해관계. 이렇게 켜켜이 엮인 겹들이 지켜준다. 시장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뒷전이 되어가는‘, 진실과 사실의 갭을 어느 시점까지는 공고히 지켜낸다. 그러나 ‘어느 시점까지‘다. 시장의 특이점이 오면 모든 게 바뀐다. 얌전한 말로 ‘혁신’, 거친 말로 ‘시장파괴자가 등장하는(Disruptive Innovation)‘시점이다.
굳이 산업이 아닌 일상의 시선으로도 이를 체감한다. 퇴근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을 보지 않고 밤에 거실 소파에 누워 모바일로 톡톡 건드리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물건이 와있다. 덕분에 대형마트는 급속도로 자취를 감춘다. 마트 입장에서 무서운 점은, 그래도 사람들이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보다 영화 제작 편수가 늘고 한 사람당 보는 영화가 늘어도 극장은 줄었다. 극장도 마트의 길을 따라간다. 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수도 마찬가지다.
쿠팡, 컬리, 넷플릭스, 토스는 레거시 대비 무엇이 압도적이어서 이렇게 시장을 뒤집었을까. 원가 절감, 생산 효율, 유통 마진, 레거시 이해관계와 패권의 인수 등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그들이 기존 산업을 뒤흔들고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우뚝 선 것은 ‘사람 중심‘의 가치를 온전히 실현해서다. IT산업에서는 이를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이라 말해왔다. 이를 통해 산업의 레거시를 압도하고 다른 산업까지 파괴하며 심지어 업을 재정의하기에 이른다. 테슬라가 한 일은 차를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꾼 것만이 아니다. 차를 ‘탈 것(vehicle)을 넘어 사람이 쉬고, 즐기고, 일하는 공간(Space)’으로 재정의한다. 이로써 자율주행 기술과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OS(Operating System)를 탑재해 차를 ‘나를 이동시켜 주는 전자기기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이 관점의 중심에는 사람과 기술, 그리고 그것을 잇는 사용자 경험(UX)이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3년 전 공간컨텐츠실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부동산을 공간의 관점으로 해석해 차별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할이다. 사용자 경험(UX)과 이를 최적으로 실현할 기술(OS와 공간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한다. 위와 같이 산업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자산운용사로서 고민하며 만든 조직이다. 당사가 속한 업계에서는 생소한 시도였고 여전히 그렇다.
오랜 기간 시장을 끌어온 유동성의 시대가 지나갔다. 다정했던 유동성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지만, 다시 와도 예전 그대로 또 누리긴 장담이 어렵다. 시장에서 ‘입지’와 ‘금융’은 여전히 출발선이겠지만 더 이상 결승선을 담보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입지와 큰 차이 없는 금융 환경에서 서로 다른 가치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결승선이 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그것들은 사업의 주체가 스스로 차별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영역이 아닐뿐더러, 이미 세상이 맛본 ‘대소비자의 시대’는 산업과 사회 구석구석을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어서다. 결승선에서 무엇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할지는 레거시 밖의 다른 영역에서 가치를 더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소비자의 사용자 경험에 달려있다. 그것이 부동산의 가치를 넘어 공간의 가치로 확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땅을 채우는 것은 건물이고, 건물을 채우는 것은 공간이며, 공간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겐 맥락이, 공간에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기술이 필요하다. 이지스 공간컨텐츠실은 이를 이 시장의 ‘사용자 경험‘이라 여긴다. 사용자 경험의 가치와 그것을 극대화시킬 기술이 이 시장까지 번져 넘어오고 있다. 땅의 가치에서 핵심은 입지라면, 공간의 가치에서 핵심은 사용자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