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인상은 대개 이렇다. 검은색 양복이나 드레스를 차려입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 ‘거장’이나 ‘대가’란 수식어가 붙은 연주자는 예외 없이 이런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손짓 하나, 표정 하나 튀는 법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클래식 음악계라고 해도 ‘아웃라이어’는 있다. 자유로운 복장은 기본. “연주자는 오직 무대에서만 말한다”거나 “앙코르는 2~3곡 정도가 적당하다”는 통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무대 밖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앙코르로 무려 18곡을 연주하는 등 어찌보면 제멋대로다.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연주자들이 잇따라 한국 무대에 선다. ‘사회 비평가’란 별명이 붙은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36)와 ‘대중가수보다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유자 왕(36)이 주인공이다. 개성과 실력 겸비한 레비트와 왕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레비트는 여느 음악인과는 다르다. 정장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상대방과 논쟁하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음악 외엔 입을 닫는 거의 모든 클래식 아티스트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팬데믹 시기에는 트위터로 53차례의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을 선보이는가 하면, 네 줄의 악보를 840번 반복하는 곡인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짜증)을 16시간 동안 연주해 온라인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의 좌절을 표현하는 취지로, ‘소리 없는 비명’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레비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뛰어난 피아노 실력 때문이다. 레비트는 빈 필, 뉴욕 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등 최정상급 악단과 손을 맞춘 최정상급 피아니스트다.
25일 내한하는 왕은 레비트와 전혀 다른 캐릭터다. 리모와, 롤렉스, 라메르, 스타인웨이 등 명품 브랜드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는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클래식계 슈퍼스타다. 미니스커트, 하이힐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모습으로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충격을 줬다.
튀는 건 의상만이 아니다. 왕은 작년 내한 공연에서 앙코르로 18곡을 쏟아냈다. 사실상 ‘3부 공연’을 선물한 셈이다. 그만큼 왕은 연주 현장에서의 즉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프로그램도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
색다른 공연 줄 이어기존에는 보기 힘든 이색 공연도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서울 마포문화재단은 다음달 5~7일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3국의 실력파 피아니스트들의 릴레이 공연을 연다. 각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김도현, 킷 암스트롱, 다케자와 유토가 나선다. 킷 암스트롱 공연 2부에서는 이들 셋이 한 대의 피아노로 같이 연주한다. 이들은 라흐마니노프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를 통해 아시아 3국의 화합을 완성할 예정이다.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선 형제가 한무대에 오른다. 건반 연주자 스콧 브러더스 듀오다. 이번 공연에선 형(조너선 스콧)이 오르간을, 동생(톰 스콧)이 피아노를 맡아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등을 들려준다. 8일 뒤 그 무대는 15년지기 친구들로 채워진다. 중학교 동문(예원학교)인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주인공이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