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결정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수립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내년 주택 보유세 부담은 올해와 비슷할 전망이다. 정부는 현실화율이 폐기됐을 때 활용할 복수의 대안도 검토 중이어서 사실상 현실화율 로드맵 폐기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내년 보유세 부담 비슷하다지만
국토교통부는 21일 내년 현실화율 동결로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남영우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현실화율 동결로 공시가격은 개별 주택의 시세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며 “올 9월까지 시세 변동을 기준으로 전반적인 세 부담은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별로 시세 변동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일부 지역은 보유세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올 들어 가격이 오른 전국 주요 단지 보유세는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경제신문이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는 올해 재산세만 252만6000원을 냈다. 내년에는 재산세 275만8000원, 종합부동산세 7만9500원 등 보유세 283만7500원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아파트의 올해 공시가격은 10억9400만원으로, 종부세 부과 기준(12억원)에 못 미친다. 그러나 시세를 토대로 추정한 내년 공시가격은 12억4245만원으로 종부세 대상이 된다. 보유세 추정치는 시세(하한가)에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 69%와 공정시장가액비율 60%를 적용해 산출했다.
고가주택의 보유세는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 전용 82㎡ 보유 1주택자는 올해 보유세 438만8424원을 냈지만 내년에는 632만7780원으로 4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이 올해 15억1700만원에서 내년 20억3310만원으로 오를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내년 세 부담은 기획재정부가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 조치에 나서면 낮아질 수 있다. 우 부지점장은 “올해 정부가 1가구 1주택자에게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43~45%를 한시 적용했고, 내년에는 공정시장가액비율 60% 적용을 전제로 공시가를 추정해 보유세를 계산했다”며 “정부가 내년에도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인하하면 보유세는 더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현실화 계획 폐기도 검토”국토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을 재수립하기로 한 것은 기존 로드맵에 따른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해 국민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현환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폐기까지도 후보지에 놓고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상반기 진행할 연구 용역 결과가 폐기로 나오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최장 2035년(공동주택은 2030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의 90%로 올리는 로드맵을 내놨다. 이 영향으로 2011~2020년 연평균 3.02% 상승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현실화 계획 시행 후인 2021~2022년 연평균 18.12% 올랐다. 당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현실화율까지 확대되면서 공시가격 상승 폭이 훨씬 커진 것이다. 공시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세 부담도 급격히 높아졌다.
집값이 내려갔는데도 공시가격이 오르는 모순된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전면 재검토를 결정한 이유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기존 로드맵을 따를 경우 전체 공동주택(1486만 가구)의 6.9%인 103만 가구가 올해 시세가 하락했음에도 공시가격은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서기열/김소현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