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서 ‘내로남불’이란 말이 돈다. 지난 17일 먹통이 된 행정전산망이 사흘이 지난 20일에야 복구되는 사이 정부 대응이 상식 밖이었기 때문이다. ICT 기업의 서비스에서 장애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던 긴급 공지도, 정부 고위 관계자의 불호령도 없었다. 제 식구 감싸기로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21일 만난 한 정보보안 전문가는 “정부가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를 서둘러 덮고 축소하려는 데 급급한 것 같다. 사태를 풀어가는 과정이 의문투성이”라고 토로했다. 행정안전부는 장애가 발생하고 사흘째인 19일 ‘L4 스위치’라는 네트워크 장비 이상을 장애 원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장비가 왜 이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못 하고 있다. 업계는 이 상황을 의아해하고 있다. L4 스위치를 교체하는 건 한두 시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행동도 느렸다. 행정전산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의는 17일 오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빗발쳤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즉각적인 공지나 안내는 없었다. 사태가 발생하고 9시간여가 지나서야 “민원 처리와 관련해 모든 행정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첫 입장을 냈다. 재발 방지 대책 논의에도 시간이 걸렸다. 책임 논란이 제기되고 나서야 19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종합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올해 1~2월 LG유플러스 고객정보 유출·접속 장애 사고 때만 해도 정부는 기민했다. 정부가 회사 경영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정부 차원의 특별조사점검단도 꾸렸다.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 3사 이용자 피해 보상 기준을 ‘3시간 이상 장애 시 6배 배상’에서 ‘2시간 이상 장애 시 10배’로 높이도록 이용약관을 개정시켰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장애에도 정부는 매서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 이틀 뒤 출근길에서 “국민 입장에선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실장 중심의 상황실을 장관 주재로 격상해 지휘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재발을 막겠다며 백업 시스템 마련을 골자로 한 일명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마련했다. 정작 1년여 뒤 행정안전망 먹통 땐 백업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다.
행정전산망의 운영 주체는 행안부였다. 관리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행정망 먹통에 대한 정부 대응은 ‘평온’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기업 서비스에 장애가 있을 땐 국민 일상을 마비시켰다며 경고하고, 정작 국가시설에서 생긴 문제엔 뒷짐을 지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신뢰를 되찾으려면 명확한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