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멤버 전원 사임하고, 올트먼을 복귀시켜라.”
챗GPT 열풍을 몰고 온 샘 올트먼 오픈AI 전 최고경영자(CEO)를 해고한 이사회에 대해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사회가 사임하지 않을 경우 올트먼 전 CEO를 따라 마이크로소프트(MS)로 이직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회사 전체 인력 대부분이 이 같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이 실제 행동에 나설 경우 오픈AI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오픈AI 직원들은 이날 이사회 사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돌렸다. 여기에 서명한 직원들은 이날 오전 500명에서 오후에 700여명으로 늘었다.현재 오픈AI 전체 직원(770명)의 대부분이 여기에 동의한 것이다.
이들은 이사회가 사임하지 않을 경우 회사를 떠나 올트먼 전 CEO를 영입한 MS로 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사회 행동은 오픈AI를 감독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며 “우리의 사명과 능력, 판단력, 직원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MS는 우리가 합류하기를 원할 경우 모든 오픈AI 직원을 위한 자리가 있다고 보장했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실제로 오픈AI를 한꺼번에 떠나면 최악의 경우 회사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
이 명단에는 오픈AI 공동창업자이자 이사회 멤버인 일리야 수츠케버 수석과학자도 이름을 올렸다. 일리야는 올트먼 해임을 결정한 이사회 멤버 4명 중 한 명이다. AI의 개발속도 등 의견 차이로 올트먼과 갈등을 빚고, 그의 해임에 선봉장 역할을 한 수츠케버가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직원들 편에 선 것이다. 그는 이날 오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올트먼의 해임 결정을 반성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사회 결정에 참여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며 “오픈AI를 해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구축해온 모든 것을 사랑하며 회사가 다시 뭉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붕괴 우려까지 나오는 오픈AI와 달리 MS는 AI 경쟁력을 손쉽게 내재화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MS는 오픈AI에 2019년부터 총 130억달러를 투자해 지분 4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하지만 오픈AI를 비영리 이사회가 지배하고 있어 MS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이번 사태로 오픈AI가 타격을 입게 되면 투자자 측면에서 MS도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올트먼을 포함한 오픈AI의 핵심 기술팀을 직접 고용함으로써 그보다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MS가 오픈AI 회사 전체를 인수·합병할 때 겪어야 할 많은 규제와 절차를 생략하고, 핵심 지도부의 기술과 전략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매체는 “올트먼 산하의 MS AI 그룹에 GPT-4 책임자 야쿱 파초키, 오픈AI의 주요 연구원 사이먼 시도르 등이 합류할 것”이라고 전했다. CNBC는 “챗GPT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오픈A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미라 무라티도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웨드부시 증권의 기술 애널리스트 댄 아이브스도 이날 “올트먼과 브록먼이 MS에서 AI를 운영하면서 이제 MS는 AI 개발에서 더욱 강력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올트먼 전 CEO는 오픈AI 이사회 의장이었던 공동 창업자 그렉 브록먼을 포함한 몇몇 핵심 연구인력과 함께 MS에 합류하기로 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이날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에 “올트먼 전 CEO와 브록먼이 MS에 합류해 새로운 첨단 AI 연구팀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올트먼은 전날까지 오픈AI 이사회 측과 CEO 복귀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현 이사 전원 사임과 새 이사회 구성 등을 요구했으나 이를 이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국 MS행을 택했다. 새 이사진으로 세일즈포스의 전 공동 CEO인 브렛 테일러, 에어비앤비 CEO이자 올트먼의 오랜 친구인 브라이언 체스키, 에머슨 컬렉티브의 설립자 겸 사장인 로렌 파월 잡스 등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 이사회는 올트먼과 브록먼 등 총 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이 해임되면서 수츠케버 수석 과학자, 소셜 지식공유 플랫폼 쿼라 CEO 애덤 디엔젤로, 기술 사업가 타샤 맥컬리, 조지타운 보안 및 신흥 기술 센터의 헬렌 토너 등 4명이 남았다. 이 중 수츠케버마저 등을 돌리면서 사외이사 3명만이 이사회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오픈AI는 후임 CEO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 공동창업자인 에멧 시어를 지목했다. 그는 올트먼 해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X 계정에 “독립적인 조사관을 고용해 오픈AI의 혼란을 초래한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어는 “올트먼의 해임과 관련된 절차와 소통이 매우 잘못 처리돼 우리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된 것은 분명하다”며 “필요하다면 지배구조 변경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