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의식한 금융당국 "은행이 직접 금리 부담 줄여달라"

입력 2023-11-20 18:54
수정 2023-11-21 02:08

은행권이 2조원 이상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을 계기로 은행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은행 이자 수익에 ‘횡재세’를 물리는 법안까지 제출하자 자발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시각도 있다. 은행권은 지난 2월에도 윤 대통령의 ‘돈 잔치’ 지적이 나오자 3년간 10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강화 방안을 내놨다. 일각에선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할 복지 영역의 지원을 민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횡재세 부담액보다 더 낼 듯 5대 금융지주인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금융과 지방 금융지주인 BNK DGB JB 등 8개 은행계 금융지주 회장들은 20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당국과의 간담회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자발적인 상생금융안 마련을 약속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금융지주 회장은 “고금리로 늘어난 은행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측면에서 상생 해법을 제시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은행권이 상생금융 규모를 2조원 이상으로 추진하는 것은 횡재세와 관련이 깊다는 관측이 나온다. 횡재세 형태로 민주당이 추진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올해 은행권 부담액은 최대 1조9000억원에 달한다. 횡재세 부담액 이상을 내놔야 횡재세 도입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도 이날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금액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횡재세 규모를 감안하면 국회에서 기대하는 수준을 금융지주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은행권을 압박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횡재세 법안을 논의한다.

2조원으로 예상되는 은행권의 상생금융 지원액 중 5대 금융지주가 최소 1조5000억원 이상을 부담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5대 금융지주가 올해 3분기까지 15조6495억원의 순이익을 거둔 것을 감안하면 순이익의 10%가량을 내놓는 셈이다. 3개 지방 금융지주는 3분기 누적 순이익이 1조5751억원에 그친다는 점에서 5대 금융지주 부담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법률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계 은행들도 협조해줬으면 좋겠다”며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 외국계 은행의 참여도 요청했다.이자이익 늘었지만 수익성은 악화은행권의 상생금융 지원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 경감과 중·저신용자를 비롯한 서민금융 지원 확대 등 투트랙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향후 발생할 이자 일부를 줄여주는 방식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소상공인 대상 대출금리를 인하해 납부한 이자를 돌려주는 캐시백(환급) 형태의 지원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이달 초 ‘이자 환급’ 방식의 상생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내놨다.

서민금융 지원 확대는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을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서민과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서민금융법) 시행령에 따르면 은행은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다. 올해 출연액은 1147억원으로, 이를 최대 5000억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포함한 서민금융지원 종합방안을 다음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당국은 상생금융 재원 중 일부를 서민금융지원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다. 또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합해 금융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일정을 감안하면 은행권의 상생금융 방안은 이르면 이달 말께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이 상생금융 지원책을 앞세워 횡재세 도입이라는 급한 불은 끄더라도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은행권의 당기순이익은 5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7조원)보다 23.9% 감소했다. 조달비용 증가로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1.63%로 2분기(1.67%)보다 하락했다. 연체율 상승으로 대손충당금 부담 또한 늘어나고 있어 4분기 순익은 3분기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김보형/강현우/정의진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