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제2의 로톡'을 육성하겠다며 '리걸테크 진흥법' 제정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리걸테크 업계에선 초강력 규제를 담은 법안 내용 때문에 '리걸테크 고사법'이 나오게 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21일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는 24일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권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다.
권 의원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격과 해당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로톡, 로앤굿 등 법률 플랫폼이 국내에도 많이 생겨났지만, 현행법상 리걸테크 산업의 허용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분쟁이 붙었던 것을 고려해 법제화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권 의원은 "국가 차원의 리걸테크 산업 진흥 정책이 하루빨리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은 '진흥법'이 아니라 '초강력 규제법'이 나오게 됐다며 벌벌 떨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원문에 따르면 이 법안은 법무부에 리걸테크 기업의 허가·감독권을 부여하고, 리걸테크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를 명시한 게 골자다.
문제는 이 법안대로라면 스타트업들은 리걸테크 산업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권 의원안 제 10조에 따르면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자본금을 보유'해야 하며, '변호사를 포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문인력과 시설·장비'를 보유해야 한다. 또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관계자는 "자본금이나 인력, 시설·장비 등에 대한 세세한 허가 기준은 새로운 산업에 진입하려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엔 커다란 장벽"이라고 토로했다.
리걸테크 산업은 분야가 다양해 변호사 소개뿐 아니라 판례 제공, 법령·기사 검색, 법률 문서 자동 작성, 법률 문서 번역, 승패율 예측, 법안 통과율 예측 등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더구나 신산업인 만큼 어디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현재 운영 중인 형태의 사업만 고려해 허용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중요 사항을 변경하려면 일일이 허가·신고를 하도록 했는데, 실제 현장에선 "번거로운 행정절차가 추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사업 허가 판단을 법무부가 하도록 했는데, 법무부가 테크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더 전문성을 갖고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법률 서비스 제공 대상이 '법률 종사자'냐 '일반인'이냐에 따라 각각 허용 사업 영역을 달리 규정한 제 14~15조도 문제적 항목으로 꼽았다.
권 의원안은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는 '법조인에 관한 정보 제공', '자동화된 법률 서식의 제공 및 작성', '법령, 판례 등 법적 분쟁 해결을 위한 정보 제공', '법률 문헌의 제공'에 국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반면 법률 종사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범위에서 '자동화된 법률 자문', '법률 문서 등 데이터 분석' 등을 추가로 허용했다. 소비자가 일반인이냐 법률 종사자냐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법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를 분리해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법안은 듣도 보도 못했다"며 "실익도 없고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한참 뒤떨어지는 법안"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스타트업 임원도 "'진흥법'이라고 이름 붙인 법률 중 이 정도로 강력한 감독 규정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사업을 접어야 할 업체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