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블랙핑크가 콘서트라고 연 것일까? 가을 야구도 막을 내렸는데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고척 스카이돔에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이유는 ‘2023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은 지난 2011년부터 라이엇 게임즈가 매년 개최하고 있는 글로벌 e스포츠 대회다. 최고 동시 시청자 수가 2021년 기준 7386만 명에 달한다. 누적 시청자 수는 매년 수억 명에 이른다. 축구의 ‘월드컵’에 빗대 소위 ‘롤드컵’으로도 불린다.
올해 롤드컵은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 지난 2014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 국내 개최다. 19일에 열린 결승전에서는 국내 프로게임단 T1과 중국리그 LPL의 웨이보 게이밍(WBG)이 맞대결을 펼친다. T1은 LoL e스포츠의 전설인 ‘페이커’ 이상혁(27)이 속한 글로벌 인기 팀이다. 이상혁은 지난 2013년과 2015년, 2016년 총 3번의 롤드컵 우승을 기록한 그는 명실상부한 롤의 아이콘이다.
이상혁이 7년 만에 4번째 롤드컵 우승에 도전한다는 사실에 결승전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그는 2022년에도 롤드컵 결승에 올랐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주최 측에 따르면 고척돔 1만8000석이 모두 꽉 찼다. 결승전 티켓 가격은 정가가 8만 원에서 24만 원인데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수백만 원에 암표 거래가 올라오고 있다. 결승전을 상영하는 CGV 사이트에선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예매율 2위에 오를 정도다. 서울권 대부분의 극장은 매진된 상황이다. 거리 응원이 펼쳐지는 광화문에도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릴 전망이다.
롤드컵 시청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4400만 명이던 최고 시청자 수는 2020년 4595만 명에서 2021년 7386만 명까지 불어났다. 라이엇 게임즈에 따르면 올해 시청자 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나즈 알레타하 글로벌 e스포츠 총괄은 지난 15일 열린 결승전 미디어데이에서 “아직 추정치지만 올해 시청자 수가 작년에 비해 65% 이상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번 흥행에는 한국팀과 중국팀의 라이벌 관계가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8강에 중국팀이 4님, 한국팀이 3팀 그리고 북미팀이 1팀 진출했다. 한국 대 중국 팀 구도에서 젠지 e스포츠와 KT 롤스터 등 2팀이 차례로 중국팀에게 패했다. 하지만 홀로 남은 T1이 8강과 4강에서 중국팀 리닝 게이밍과 징동 게이밍을 연이어 격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으로 e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T1에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한 ‘페이커’ 이상혁, ‘제우스’ 최우제, ‘케리아’ 류민석 등이 속해있다. 오프닝 공연으로 글로벌 인기 걸그룹인 뉴진스가 등장하는 것도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롤의 높은 인기만큼 선수들의 연봉도 ‘억소리’가 난다. 먼저 국내 프로게이머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이상혁은 연봉이 75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는 작년 T1과 3년의 재계약을 맺으면서 스톡옵션을 제공받았다. 에스케이텔레콤씨에스티원(T1)이 지난 1월에 올린 공시에 따르면 이상혁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했고 이를 행사하면 T1 지분 5.66%를 보유하는 주주가 된다. 이외에도 류민석 등 T1 선수단은 모두 수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기업들도 잠재적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롤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이번 롤드컵의 경우 마스터 카드, 메르세데스 벤츠 등이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이외에도 레드불, 시크릿랩, 아마존 웹 서비스(AWS), 코카콜라, 오포 등도 대회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이 T1을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현대자동차, 기아 등도 각각 젠지 e스포츠, 디플러스 기아 등 e스포츠 게임단을 후원하고 있다.
T1과 WBG의 경기는 5전 3선승제로 진행된다. T1이 승리할 경우 페이커와 T1은 통산 4번째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다. 현재도 역대 최다 우승 팀이지만 더 범접할 수 없는 기록을 세운다. T1 팬들은 T1의 우승을 위해 헌혈, 쓰레기 줍기 등 선행을 실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행을 통해 덕을 쌓아 T1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하자는 취지다. 이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가 쓰레기를 줍는 것을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파생된 온라인 밈이다. 지난 7월에는 지하철 6호선 열차에서 다른 승객의 토사물을 치워 화제가 된 청년이 T1의 팬으로 알려져 ‘페이커’ 이상혁 등 선수단과 만남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