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끝이 있다. 국가의 번영도 마찬가지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불편한 화두다.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지만 다시 암울했던 과거로 돌아갈까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걱정은 섣부르다. 저력이 있다면 위기가 닥쳐도 몇 번이고 되돌릴 수 있다.
로마가 그랬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건국해 서로마제국이 476년 멸망하기까지 1229년 동안, 동로마제국이 무너진 1453년까지 2206년 동안 존속했다.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보였다.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은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책이다. 통사(通史)는 아니다. 공화정, 회복탄력성, 공공성, 대립과 경쟁, 영웅과 황제, 후계 구도 등 12가지 키워드를 뽑아내 설명한다. 모토무라 료지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썼다. 고대 로마사에 있어 일본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비슷한 주제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유명하다. 여섯 권에 걸쳐 4150쪽에 이른다. 이런 방대함이 부담되는 사람에게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은 좋은 대안이 된다. ‘쇠망’뿐 아니라 로마의 건국과 부상, 쇠퇴와 재부상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를 다루는 것도 장점이다.
로마는 ‘로마왕국’으로 세워졌다. 7대 왕인 타르퀴니우스에 이르렀을 때 사건이 터졌다. 대규모 하수도 공사에 민중을 동원하며 불만이 커진 가운데 왕의 아들 섹스투스가 아름답고 정숙한 유부녀 루크레티아를 겁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폭동이 일어났고 왕은 쫓겨났다. 이후 ‘로마 공화국’ 시대가 열렸다.
공화정 로마는 500년 가까이 이어졌다. 반면 비슷한 시기 민주정을 택한 아테네는 그만큼 수명이 길지 못했다. 책은 아테네 민주정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을 원인으로 든다. 탁월한 지도자가 민중을 설득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을 때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민중은 큰 그림을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치적 관점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공화정 로마는 왕은 없었지만 귀족이 중심이 돼 나라를 이끌었다. 평민들 사이에 신분 구별과 차별에 대한 불만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갈등이 사회 체제를 흔드는 투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집정관(독재), 원로원(귀족정), 민회(민주정)라는 세 요소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룬 덕분이다.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호민관, 성문법인 12표법 제정, 귀족과 평민의 통혼을 허용하는 카눌레이우스법 등도 사회 통합에 기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가 도시 국가에 머무는 동안 로마는 영토를 확장하며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기원전 146년 로마는 황제는 없었지만 사실상 제국을 완성했다. 한 세기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대승으로 마무리 지었고, 서지중해를 로마의 앞바다로 만들었다. 승리의 맛은 달콤하지 않았다. 로마는 ‘승자의 저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과 토지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했다. 남성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그들이 농사짓던 땅을 상류계급이 차지했다. 이 땅을 경작하기 위해 노예를 부리면서 노예제가 번성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 정치적 균형이 무너지고 내란이 빈번해졌다. 애국심이 사라지고 개인의 부귀영달을 중시하는 의식이 자라났다.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참전용사였던 그라쿠스 형제가 그런 예다. 이들은 호민관으로 취임해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득권의 반발이 엄청났다. 둘 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내란은 심화하고, 게르만 민족 등이 국경을 넘어왔다. 원로정의 폭정과 무능은 카이사르를 거쳐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제국’이 들어서고야 일단락됐다.
저자는 노예제가 로마의 발전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귀찮고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모조리 노예에게 맡기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혁신을 위한 필요성이 줄었다. 포장도로, 상하수도, 아치 구조의 콘크리트 등 기술력을 자랑하던 로마가 더 이상 기술 진보를 이루지 못한 이유다.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 정치적 부패와 무능, 이민족의 유입과 무관용,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사회 분위기 등 다양한 요인이 로마의 쇠락에 영향을 미쳤다. 책에서 인용한 “로마사에는 인류의 경험이 응축돼 있다”는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의 말처럼 로마의 흥망성쇠는 지금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