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 패션기업은 최근 가을·겨울(FW) 시즌 신제품 화보 촬영 일정을 6개에서 1~2개 수준으로 대폭 축소했다. 올 3분기 영업이익이 두자리수로 감소하는 등 실적이 악화하면서 급하게 마케팅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다.
고물가 여파로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패션기업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고 있다. 3분기가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예상치를 하회하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데다가 이달 초까지 이어진 따뜻한 날씨에 4분기 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진 탓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오락가락한 겨울 날씨에 한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4분기 매출까지 타격을 입으면서 패션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계절의 영향을 덜 받는 '시즌리스' 제품을 강화하는 등의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다. ○3분기 어려웠는데...4분기도 '글쎄'
1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올 3분기 패션업계의 실적이 일제히 떨어졌다. 지난해 엔데믹으로 보복소비가 폭증한 데 따른 역기저효과 영향도 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은 영향이다.
주요 패션기업들 중에서는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한섬, 그리고 LF는 2분기에 이어 역신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빠졌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75.1% 감소한 60억원을, 한섬은 73% 떨어진 87억원을 기록했고, LF는 51.5% 감소한 14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매출은 2479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 늘었지만, 적자폭은 확대됐다. 삼성물산은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3.8% 증가했다.
비수기로 꼽히는 3분기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10월부터 11월초까지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며 4분기 실적에도 먹구름이 드리우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가을·겨울 시즌은 단가가 높은 외투류가 많이 팔려 패션업계 최대 성수기로 분류된다. '4분기가 빵 터지면 1~3분기 적자를 모두 메울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올 가을은 예년보다 따뜻한 만큼 업계에서는 '가을 장사는 다 망쳤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시즌 초반까지 넘 따뜻했던 만큼 가을 옷 수요는 거의 놓쳤다고 본다"며 "지금은 급작스럽게 추워져서 가을옷이 안나가는데, 이번에 못 판 가을옷은 고스란히 재고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락가락 기온에 전략 대폭 수정
그나마 1~2주 전부터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다. 이달 둘째주부터 겨울옷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연말 크리스마스·신년 선물 수요가 있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10월 매출이 부진했던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해 11~12월에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하는 패션기업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4분기 목표 매출을 맞추려면 지금이라도 더 많이 팔아야 한다"며 "11월과 12월 진행되는 유통사들의 할인행사와 맞물려 마케팅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 설명했다.
겨울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엘니뇨와 북극한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가 있는 해에는 초겨울 날씨가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아지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한파 영향으로 급작스러운 맹추위가 찾아오기도 한다. 겨울철 기후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패션기업들의 4분기 전략에도 변화가 생기는 분위기다. 보다 다양한 계절에 입을 수 있는 시즌리스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랜드월드는 이번 시즌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에 맞춰 두꺼운 패딩보다는 경량패딩 라인업을 강화했다. 이에 스파오의 올해 경량 패딩 매출은 전년 대비 540%, 뉴발란스는 250% 성장하는 성과를 냈다. 노스페이스는 올 겨울 강수량이 예년보다 많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노스페이스의 스테디셀러인 눕시 재킷에 방수기능을 대폭 강화한 신제품을 내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종잡을 수 없는 겨울 날씨에 반팔 위에 코트를 입기도 하고, 쉽게 벗을 수 있는 카디건을 많이 활용하는 등 여러 시즌의 아이템이 혼재하는 상황"이라며 "계절과 관계 없이 입을 수 있는 제품을 강화하는 방향을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