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묵직한 사운드가 객석을 파도처럼 덮쳤다

입력 2023-11-16 18:35
수정 2023-11-17 01:01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들은 저마다 특별한 흔적을 자랑한다. 악단에 몸담은 음악가들의 이상(理想)이 음질과 음색에 켜켜이 쌓인 결과다. 280년 역사의 독일 명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그 옛날 멘델스존이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로 활약한 악단이다.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당대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 수시로 협연한 악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가 12년 만에 내한한다는 소식에 공연 첫날부터 클래식 애호가들이 반색한 이유다.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지 불과 사흘 만에 또다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른 조성진은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가 들려준 곡은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슈만이 아내 클라라를 위해 모티브를 쓴 곡으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성진은 첫 소절부터 반동에 몸이 튀어 오를 만큼 강하게 건반을 내려치면서 극적인 역동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가도 금세 부드러운 손 움직임과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음색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선율을 조형해내면서 슈만의 다채로운 감정선을 살려냈다.

건반을 누르는 깊이와 무게,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의 효과를 아주 세밀하게 조율하면서 때론 꿈꾸는 듯한 몽환적인 잔상으로, 때론 폭풍우 같은 강렬한 에너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슈만 작품 특유의 독특한 리듬 표현이 다소 불분명하게 들리는 구간이 더러 있긴 했지만, 전체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철두철미한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이끄는 베를린 필이 조성진과 조금의 틈도 없는 견고한 앙상블을 이뤄냈다면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조성진은 서로에게 음악적 공간을 열어주는 유려한 앙상블로 듣는 이를 매료했다.

2020년 베를린 필, 2022년 보스턴 심포니 공연 등에서 조성진과 수차례 호흡을 맞춘 넬손스는 피아니스트의 음악적 흐름을 꿰고 있다는 듯 악단의 표현 요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매만지면서 음향적 조화를 이뤄냈다. 악단 특유의 무거운 음색이 조성진의 맑게 빛나는 색채를 해치지도 않았고, 조성진의 격렬한 악상 표현이 악단의 호흡보다 앞서가지도 않았다.

2부를 채운 작품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였다. 넬손스는 악단 특유의 짙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충분히 살려내면서도 셈여림, 색채, 표현 대비는 귀신같이 짚어냈다. 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명료한 지휘에 단원들은 유연하게 반응했다.

제한된 음량과 정제된 음색으로 단단한 음향적 배경을 만드는 현과 그 위로 포개지는 목관의 선명한 선율, 웅장한 금관의 울림이 만들어내는 강한 응집력은 청중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치 어두운 파도가 정면으로 몰려오는 듯한 광활한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한순간도 거칠다고 느껴지지 않는 소리에서 지휘자와 악단의 대단한 집중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1악장에선 선명한 악상 대비와 고상한 균형미로 가슴을 파고드는 애수와 격정적인 악상을 제대로 표현해냈고, 3악장에선 단순히 큰 소리가 아니라 조금의 공간도 없이 서로의 선율에 흡착된 음향으로 서정적인 주제와 비극적인 주제를 오가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진감을 선사했다.

4악장에선 장대한 팀파니의 울림과 길게 뻗어나가는 현의 선율, 광활한 관악기의 음색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추진력이 홀 전체를 메우면서 ‘전쟁에서의 승리’를 포효했다. 지루할 틈 없는 입체적인 서사에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즐거움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가 고수해 온 음악 철학이다. 즐거움의 형상을 소리로 들려줄 수 있다면 분명 이들의 음악이었다. 유쾌한 사건으로 웃음 짓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까마득한 지하에서 들려오는 듯한 어두운 음향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피아노와의 긴밀한 호흡에 감정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줄 수 있는 그런 깊이 있는 즐거움 말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