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가 아니라 부사장으로 간다고요?"
14일 기획재정부가 술렁였다.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옮긴 이병원 전 부이사관 소식 때문이다. 예상보다 높은 직급으로 이직하자 다소 놀란 분위기다. 기재부는 '부처의 꽃'으로 통하지만 근무강도는 살인적이다. 그만큼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종종 기재부로 구급차가 오는 경우가 있다. 밤샘 근무에 과로로 쓰러지는 공무원들이 적잖아서다. 스트레스에 따른 탈모 환자도 속출한다. 탈모 치료로 유명한 청주의 모 병원 피부과엔 기재부·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이 몰린다는 소문도 돈다.
삼성전자는 분기보고서를 통해 최근 이병원 기획재정부 부이사관(3급)을 기업활동(IR)팀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기재부 간부가 삼성전자로 이동한 것은 2016년 김이태 부이사관(현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부사장) 이후 7년 만이다.
행정고시 42회인 이병원 부사장은 기재부 경제정책국·정책조정국에서 경제정책과 정책 조율 업무를 맡았던 ‘정책통’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문재인 정부 청와대로 파견을 가서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문재인·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을 이어서 근무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만큼 일처리가 탁월해 '경제정책국 에이스'로 통했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이 부사장이 상무로 이직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이태 부사장도 삼성으로 옮길 당시엔 상무 직급으로 시작했다. '부사장 영입'은 기재부 관료들의 '몸값'이 치솟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있다.
삼성은 물론 한화그룹도 기재부 국장급 간부를 영입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료들은 정책 설계 경험이 많은 만큼 신사업 등 각종 전략을 수립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여기에 부처와 국회, 해외기관, 언론 등 각계에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관료로서 쌓은 정책 설계 경험이 기업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병원 부사장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한 경력을 높게 보고 파격적 직급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 부사장 이직에 관료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들이 겪는 박탈감과도 맞물린다. 특목고와 스카이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졸업해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관가에 입성했지만, 민간기업과 비교해 급여 격차가 상당하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관료들의 고민이 특히 크다. 대학 입학을 앞둔 자녀를 둔 이들 세대 관료들은 답답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기업과 달리 공직사회는 대학 학자금 지원제도가 없다. 주변 또래들과의 연봉 격차도 적잖다. "국가 정책을 다룬다는 자부심만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다"는 푸념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익환/강경민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