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13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왔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 미·중 경쟁과 공급망 재편,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중첩된 대외 리스크를 뚫고 이룬 값진 성과다. 더 들여다보면 자동차·기계, 선박 같은 주력 산업의 견조한 수출 증가와 함께 반도체 수출 감소폭이 줄어든 것도 보탬이 됐다. 지역별로는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대중(對中) 수출이 올해 꾸준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고 대미(對美) 수출도 10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 주효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수출 확대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은 먼데,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고금리 여파로 세계 경제 침체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고, 중동 사태는 어떤 경로로 우리 수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또 주요 국가들이 ‘경제안보’를 명분으로 교역의 문턱을 높이는 지금,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중동 행보는 큰 의미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를 찾아 202억달러 규모 계약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신(新)중동 붐’의 불씨를 지폈다는 점에서다. 중동이 ‘포스트 오일’ 시대를 선언하며 재도약을 위한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시점을 포착해 우리의 경쟁력을 알렸고, 이를 통해 기업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연계해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한국 기업의 중동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한 글로벌 금융지원망을 구축했다. 사우디 국부펀드,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와 협력해 중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의 기자재 수출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돕고, 수소에너지·블루암모니아 등 청정에너지 분야 시장 개척에도 앞장선다. 새로운 길에는 기회도 있지만 리스크도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 기업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며 길을 찾는 것이 무역보험의 역할이다.
수출 확대에도 힘을 보탠다. 지난 8일 정부는 ‘민관 합동 수출확대 점검회의’에서 무역보험 지원 확대를 골자로 하는 ‘단기 수출확대 전략’을 발표했다. 블랙프라이데이, 춘제 등 해외 소비 피크 시즌에 소비재 수출 촉진을 위한 수출보험 탄력적 확대, 중소기업 수출보험·보증료 경감, 환변동보험 담보 범위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인 상승 모멘텀을 확보해나갈 방침이다.
손목시계에 장착되는 투르비용(tourbillon)이란 장치가 있다. 진동자의 움직임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손목시계는 중력 때문에 지속적으로 시간 오차가 발생한다. 회오리라는 뜻을 가진 투르비용은 이름처럼 시계 내부에서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중력에 의한 오차를 보정해 시곗바늘이 제시간에 맞는 위치에 오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중력에 맞서는 정밀 부품인 만큼 투르비용이 장착된 시계는 가치가 높다. 중력을 이겨내고 시간을 제자리로 맞추는 투르비용처럼 무역보험은 다양한 대외 리스크를 극복하고 수출이 성장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떠받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수출 성장을 이끌어가는 우리 기업들이 걱정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마음껏 경쟁력을 펼쳐 나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