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평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 중 한명인 존 루이스 개디스 미국 예일대 교수는 냉전 시기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구축된 얄타 체제는 강대국들간의 아슬아슬한 세력 균형을 가능케 했다. 서로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을 알기에,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아시아 1945~1990>의 견해는 다르다. 저자 폴 토머스 체임벌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장기 평화는 서구의 얘기일 뿐, 같은 시기 아시아에선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전쟁은 사실상 서구 초강대국들의 대리전이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동쪽으로는 만주 평원, 남쪽으로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열대우림,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및 중동의 건조한 고원'을 경계로 그 안쪽을 들여다본다. 이게 저자가 그은 아시아의 경계선이다. 넓은 지역에 흩뿌려지다보니 파괴의 규모는 그동안 간과되곤 했다. 968쪽에 달하는 이 '벽돌 책'은 아시아 전역의 참혹한 역사를 '냉전의 유산'이라는 동일한 렌즈로 분석한다.
6·25전쟁 300만명, 중국 내전 250만명, 베트남전쟁 400만명…. 냉전 동안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폭력의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 수다. 프랑스·인도차이나 전쟁(29만명), 방글라데시 해방전쟁(100만명) 등 덜 알려진 사건까지 합하면 2000만명에 이른다. 이 기간 지구촌에서 살해된 사람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저자가 냉전을 두고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시기"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책은 시기를 기준으로 아시아에서의 전쟁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처음 두 시기는 공산주의 확장과 맞물려 있다. 태평양전쟁 종전 직후 일본의 힘이 한풀 꺾이자, 그 공백에 공산주의 세력이 들어섰다. 1960년대까지 동아시아는 미국과 소련의 '이념 전쟁터'였다.
이후 냉전의 주요 무대는 동남아시아로 옮겨졌다. 중국과 러시아간 분열이 깊어지고, 미국의 베트남 개입이 본격화한 시기다. 일련의 유혈 사태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을 휩쓸었다.
세 번째 물결은 1975년 이후 중동에서 펼쳐졌다. 앞서 두 물결을 일으킨 주범이 공산주의였다면, 마지막은 인종과 종교였다. 석유 가격이 치솟자 서구의 강대국들은 중동에 배치하는 병력을 크게 늘렸다. 이로인해 중동 국가들은 식민 국가에서 벗어나 국민국가로 나아가는 시기를 냉전의 울타리에서 보내야 했다. 외세의 개입은 씻을 수 없는 인종갈등·종교갈등의 불씨를 중동에 남겼다.
그 사이 미국과 소련은 뭘하고 있었을까. 이들은 경쟁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을 펼쳤다. 냉전 초기에는 전후 유럽을 복원하는 데 힘썼다. 유럽이 어느 정도 회복하자 미국과 옛 소련은 무기와 현금, 병사를 지구 전역에 뿌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미국은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권위주의자들과 종교 세력의 환심을 사려 했고, 소련은 온전한 사회주의가 아닌 급진적 마르크스 사상을 퍼뜨리는 데 집중했다"고 말한다.
책은 강대국들의 이런 행보가 제3세계의 온건파를 궤멸시키고, 각 국가를 급진화시키는데 일조했다고 진단한다. 미국과 소련은 자기들한테 우호적인 정권과 반란군을 지원하는 '냉전 계산법'으로 동맹자를 선택했다. 덕분에 인기 없고 부패한 정부마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 장의 제목을 '당신들은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고 있다'로 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은 자신이 창조한 괴물로 인해 자신과 주변 인물이 파멸에 이르는 '친부 살인'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는 "최근 아시아 일대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은 미국·러시아 등 초강대국들이 만든 괴물"이라며 "냉전의 전장에서 부주의하게 행동했던 강대국들은 결국 그 대가를 돌려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