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ESS(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는 국내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NCM(리튬·코발트·망간) 양극재와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LFP(리튬·인산·철) 양극재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등 국내 양극재 기업들이 저가형 배터리에 들어가는 LFP 양극재 개발 및 양산 계획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자동차 고객사들로부터 LFP 배터리 공급 요청이 늘면서다. 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규제로 중국산 LFP 양극재 사용이 까다로워지는 점도 한몫했다. 이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LFP 양극재를 개발하고 양산을 앞둔 곳은 국내 양극재 빅4(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LG화학)가 아닌 소재·부품·장비 업체인 탑머티리얼이다.
탑머티리얼에 따르면 현재 ESS용 LFP 배터리 양극재 개발이 완료됐다. 현재 공장 라인을 준비하고 있으며 2024년 말 경기도 이천 본사 인근 부지서 양산할 계획이다. 첫 공장의 생산능력은 약 3000t이며 이는 약 1.5GWh에 해당한다.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아워넥스트에너지(Our Next Energy)에 ESS용 형태로 납품을 현재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양극재 업체들이 내놓은 양산계획보다 규모는 작아 자동차 업체에 납품할 양은 아니지만 양산 시점은 1년 정도 빠른 편이다.
소재·부품·장비 기업임에도 다른 양극재 기업들보다 발 빠르게 양산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던 점은 노환진 탑머티리얼 대표의 LFP 배터리 생산 경험과 맞닿아 있다. 그는 삼성SDI 1세대 엔지니어 출신으로 삼성전자 '애니콜'에 들어간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미국 2차전지 제조기업인 A123시스템에서 기술 총괄 부사장으로 세계 최초 전기차용 LFP 배터리 개발을 주도하기도 했다. 노환진 탑머티리얼 대표는 "2012년 회사 창업 후, 고부가 LFP 배터리를 개발해 중국산 LFP 배터리와 차별화를 두려고 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생산을 중단한 아픔이 있었다"며 "하지만 IRA로 규제로 그때의 경험이 LFP 양극재 양산의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탑머티리얼 다음으로 LFP 양극재 양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아프리카 모로코에 LFP 양극재 공장을 지어 연산 5만t 규모로 2026년 가동을 목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모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IRA 보조금 요건도 충족한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LFP는 북미 지역에 공급될 예정이다.
포스코퓨처엠은 2025년 2만t, 2030년 15만t이라는 LFP 양극재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엘앤에프는 작년 4분기부터 다수 고객사와 협력해 2025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LFP 양극재 개발을 진행 중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올해 연말까지 LFP 양극재 시제품을 생산해 고객사에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들어 양극재 기업이 아님에도 LFP 양극재 개발에 뛰어든 기업도 있다.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을 생산하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한국자동차연구원과 함께 지난달 고에너지밀도 LFP 배터리용 양극재 연구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강미선 기자 mis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