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싸늘한 만선열차에 올라/ 철도가 닿는 만주 어디쯤 머물거나 살았을/ 어린 송아지의 눈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한다”(시 ‘만선열차’ 중에서)
시인 곽효환(한국문학번역원장)의 문학적 고향은 ‘북방(北方)’이다. 십수년간 연해주와 만주 등을 아우르는 북방을 연구해 창작의 공간으로 삼았다. 시집 <지도에 없는 집>(2010)부터 북방의 이름 없는 사람들을 시로 호명해 왔고, 2007년 박사 논문에서는 백석, 윤동주, 이용악 등 북방 시인들을 재조명했다.
‘북방의 시인’으로 불려온 그는 5년 만에 최근 출간한 다섯 번째 시집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에서 그 오랜 여정을 갈무리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의 1부에서 시인은 여전히 북방을 바라보지만, 2~4부에서는 일상의 공간에서 현실의 아이러니와 서정을 노래하며 새로운 시적 세계를 연다. 곽 시인은 “이번 시집은 그간 저를 사로잡았던 북방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시집”이라며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풍경을 쓸 때가 됐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1967년 한반도의 남녘,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왜 북방에 오래도록 사로잡혔을까. 그는 “언젠가 상해에서 중경까지 임시정부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며 “나를 울린 건 백범 김구의 신념이 아니라 이 먼 곳까지 백범을 따라온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고 회고했다.
시집 1부에서 그는 1863년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연해주에 영구 정착한 최운보, 시베리아에서 활동했던 여성 혁명가이자 항일운동가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등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을 불러낸다. 최운보의 목소리를 빌린 시 ‘지신허 마을에서 최운보를 만나다’는 ‘갠(강)’ ‘먹킹이(사람)’ 등 함경도 방언이 생명력을 더한다.
현실에서도 시인의 눈길을 붙잡는 건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굶주림을 피해 사선을 넘은 지 10년 만에 쌀이 남아도는 나라의 수도 변두리 아파트에서”(‘죽음을 건너 죽음으로’) 굶어죽은 탈북민, “어느 날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시커먼 분진 속에 스러진 스물넷 청춘”(‘위로할 수 없는 슬픔’)과 그 어머니….
그러면서도 그는 “오기로 했고 올 것이고 오고야 말/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미륵을 기다리며’) ‘미륵’을 기다리는 마음, 즉 희망을 잊지 않고 적어둔다. 시인이 그려내는 희망의 풍경은 이름 없이 우는 이들의 옆자리를 누군가 지키며 함께 우는 것이다. “그냥 곁에 앉아 그와 함께 울어야 할 것 같다”(‘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