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이슈가 1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 때문에 고민하던 민주당은 반색하며 낙태권 이슈를 중심으로 선거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낙태권 폐지를 주장해온 공화당은 혼란에 빠졌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공화당 대선 경선 TV토론회에서는 낙태권 폐지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로 미국을 분열시킬 필요가 없다”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아기를 구하고 최대한 많은 엄마를 지원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심판은 그만두자”고 했다. ‘낙태 반대’라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한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 다른 후보들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슬레이트는 “전날 선거 결과에서 무언가를 배운 건 니키 헤일리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공화당은 전날 치러진 펜실베이니아주 대법관, 켄터키 주지사, 버지니아주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졌다. 공화당 패배인 동시에 ‘낙태권 폐지론’의 패배라는 평가다. 켄터키주에서는 민주당 소속 앤디 베시어 주지사가 대니얼 캐머런 공화당 후보를 꺾었다. 캐머런 후보가 주법무장관 재직 시절 낙태에 반대했다는 점을 집요하게 공격한 결과다. 베시어 주지사는 낙태권 폐지를 비판하는 TV 광고에 양부에게 성폭행당한 12세 여성을 직접 출연시켜 반향을 일으켰다. 버지니아주에서는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는 글렌 영킨 주지사가 내건 공약이 역풍으로 작용했다. 낙태 가능 기한을 26주에서 15주로 줄이겠다고 공언하자 여성 표가 대거 이탈했다.
낙태권이 이번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파기하면서다. 이후 각주 정부는 독자적으로 낙태권 존폐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내년 대선을 낙태권을 중심으로 ‘정책 선거’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낙태권 이슈로 바이든 대통령의 저조한 인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공화당이 낙태를 국가적 문제이자 투표율 상승의 원동력으로 삼지 못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여론조사 약세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