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 행진'에 고개드는 금리인하론…"시기상조" 선 그은 중앙은행

입력 2023-11-09 09:25
수정 2023-11-09 09:28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시장에서 유럽 지역 경기 침체로 내년 상반기부터 금리가 낮아질 거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금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중앙은행 고위급 인사들은 여전히 고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금리 인하를 논하기에는 인플레이션이 아직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 총재는 8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물론 시장은 미래의 금리 경로를 예측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이런(금리 인하) 견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완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아직은 너무 이른 시점이다. 적어도 우리가 이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이기도 한 요아힘 나겔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도 “물가 상승률 목표치에 도달하기 전 ‘라스트 마일(최종 목적지까지의 거리)’이 가장 어려울 수 있다”며 “현재의 고물가 환경에서 통화 정책은 제한적으로 취해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나겔 총재는 ECB 내에서도 매파(hawkish?통화 긴축 선호)적 성향이 강한 인물로 분류된다.



ECB의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지역 물가 상승률이 1년 전 정점이었던 10.6%에서 올해 10월 2.9%까지 하락하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충분하진 않다”며 “물가가 좀 더 안정될 때까지 금리를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는 진단을 내놨다. 이밖에 가브리엘 마클루프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도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중앙은행 총재들이 이처럼 한목소리를 낸 데는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데 따른 것이다. 물가 상승률이 점차 하락함과 동시에 유로존 지역 경제 성장률이 눈에 띄게 둔화하면서 유럽 시장에선 긴축 중단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시장에선 내년 3월까지 ECB가 금리를 내릴 확률을 75%로 보고 있다. 이 수치는 10월 초까지만 해도 30% 수준이었다.

영국의 경우 내년 중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거란 관측까지 나온다. 영란은행의 휴 필 이코노미스트까지 나서 “내년 중반쯤 금리가 인하될 거란 시장의 기대는 합리적”이라며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탰다. 영란은행은 이달 통화정책위원회에서 15년 만에 최고 수준인 연 5.25%의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동결한 바 있다.



미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현재의 시중 금리를 낮춰 긴축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통제 효과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중앙은행 총재들이 섣불리 경계심을 낮출 수 없는 이유다.

투자은행(IB) 인베스코의 마이클 매튜스 채권 담당 공동 대표는 “채권 시장은 금리가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즉시 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그런 시점에 와 있다는 데 어느 정도의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중앙은행들은 이로 인해 긴축 효과가 상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미 중앙은행(Fed)이 내년까지 금리 인하를 보류할 거란 전망이 대세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완화 시점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데 근거해서다.



Fed가 두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긴축 사이클 종료’ 시그널을 보냈음에도 Fed 내 강경파 인사들은 공개 발언을 이어갔다. 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현재의 물가 상승률은 Fed 목표치(2%)가 아닌 3% 수준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며 “물가 상승률이 빠르고 지속가능한 속도로 2%에 도달할 거란 확신을 갖기 위해선 타이트한 금융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우리가 (금리 인하를 논하기에 충분히)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했다. 로건 총재와 카시카리 총재 모두 FOMC 투표권을 갖고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