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일 모든 부처가 참여하는 물가관계 차관회의를 열어 각 부처가 소비자물가 상승률 억제를 위해 핵심 점검하는 품목을 공유하기로 했다. 각 부처에서 자율적으로 품목을 선정한 후 매주 열리는 차관회의에서 가격 동향을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오는 9일 김병환 기재부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 차관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물가관계 차관회의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재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부처뿐 아니라 전 부처 차관이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국회 일정 등으로 변동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지난 2일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맡도록 결정한 후 처음 열리는 회의다. 이날 회의에선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점검하겠다고 결정한 주요 품목이 공유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각 부처는 이날 물가관계 차관회의에서 발표할 품목을 결정하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각 부처에서 품목을 결정하면 매주 열리는 차관회의에서 해당 품목들의 가격 동향 등을 점검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물가 상황에 따라 매주 공유하고 동향을 점검하는 품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담 공무원을 지정한 라면과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및 설탕과 우유 등 7개 품목뿐 아니라 다른 품목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가 총괄부처인 기재부는 이번 물가 점검 방식이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했던 ‘MB 물가관리제’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MB 물가관리제는 2012년 1월 라면·쌀·밀가루·빵·쇠고기·소주 등 서민 체감도가 높은 품목 52개를 품목별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서 관리하도록 했던 방식을 뜻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MB정부 당시에는 범정부 차원에서 52개 관리품목을 선정하고 품목별 담당자도 함께 지정했다”며 “지금은 물가 상황에 맞춰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품목을 선정하고 담당자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처럼 업계에 대한 일방적 요청이 아니라 민관 상호협력을 통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매주 열리는 차관회의에서 각 부처가 정한 수십개 품목의 가격 동향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MB 물가관리제와 차이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물가 잡기’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일부 품목을 집중 관리하는 MB 물가관리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정부 부처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해 가격을 통제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물가 안정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는 연료 및 식품 원료 등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을 확대하고 할당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긴급 대책을 내주쯤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할당관세 적용 등의 대책만으로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오르는 것은 대부분 대외여건이나 작황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각 부처를 중심으로 물가 집중점검을 선언한 것부터가 시장 개입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식품업체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 대관 직원들은 기재부 등 세종시에 있는 주요 부처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가격을 최근에 인상한 일부 대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와 국세청 세무조사의 칼날이 본인들을 향할 수 있다는 우려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강경민/박상용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