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 러시아 원유 제재 '무용지물'…10월 판매 수입 두배↑

입력 2023-11-07 09:04
수정 2023-11-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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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유 판매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등이 지난 연말 도입한 러시아 유가 상한제가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러시아 재무부는 10월 러시아가 석유 및 천연가스 판매로 거둔 세금 수입이 1조6350억루블(약 22조9390억원)로 집계됐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는 9월의 7399억루블보다 두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서는 25% 이상 증가했다. 이는 러시아의 에너지 관련 수입이 급감했던 연초와 상황이 달라진 모습이다.

G7과 EU, 호주는 지난해 12월 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시행해 왔다. 석유 판매 수입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러시아가 제재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에서 러시아 원유를 실어 나르면서 유가 상한제 효과가 약화했다는 지적이다.

JP모간체이스의 나타샤 카네바 원자재 분석 부문 대표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는 설계대로 작동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쓸모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제재를 부과한 국가들 제외한 국가에서 러시아 원유를 실어 나르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을 운영해 원유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에 따르면 러시아는 9월 기준 180척의 유조선으로 구성된 그림자 선단을 운영 중이다. 특히 지난달 국제유가가 중동의 지정학적 우려로 배럴당 90달러선을 웃돌자 차익을 누리려는 업체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원유를 사들이는 최대 고객은 중국, 인도, 튀르키예 등이라고 WSJ은 전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원유 수출의 절반 이상이 비 G7 보험으로 선적되고 있다. 이는 지난 1월 약 35%보다 증가한 수치다. 서방국들은 제재 기준에 부합하는 러시아산 원유에만 보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역시 서방국의 제재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통신사 인테르팍스에 따르면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최근 "이제 모든 사람이 G7이 내놓은 도구가 단순히 비효율적이고, 고통받는 건 최종 소비자들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서방국이 좀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마리아 샤기나 연구원은 "러시아사 원유 가격 상한선의 실효성이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며 "서방국가들이 가격 상한제 위반에 대한 엄격한 책임제를 도입하고, 증명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문서 요건을 강화하며, 부풀려진 배송 및 보험 비용을 조사해 제재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 법무부는 일부 업체가 러시아산 원유 상한선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WSJ는 최근 보도했다. 조사 대상에는 바레인과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원유 트레이딩·해운업체인 머천타일 앤드 매리타임그룹의 무르타자 라카니 최고경영자(CEO)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출에 부과한 배럴당 60달러 가격 상한제의 집행을 강화하기 위한 조처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우리가 이 가격 상한선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음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