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광주' 만든다더니…철거된 드라마 세트

입력 2023-11-06 18:05
수정 2023-11-14 17:09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에 푹 빠져 방문했는데 흔적조차 찾기 어렵네요.”

최근 세계적으로 히트한 드라마 ‘이두나!’의 배경이자 촬영지인 광주광역시가 촬영 세트 등을 보전하는 데 무관심해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주민들은 연간 도시 이용인구 3000만 명에 이르는 ‘꿀잼도시’를 만들겠다던 광주시가 어렵게 생긴 관광명소 조성 기회를 아깝게 차버렸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이두나!’는 광주시 남구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언덕을 중심으로 주변 거리와 카페 등지에서 촬영됐다. 호랑가시나무 언덕의 한 게스트하우스는 드라마 주인공 이두나(수지 분)와 이원준(양세종 분)이 함께 거주하는 셰어하우스로 등장했다. 1950년대 지어진 한 선교사의 사택으로, 한국 근대식 건축양식을 지닌 이 건물은 ‘이두나!’ 외에 ‘너를 기억해’ 등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 쓰였다.

지난해 촬영 당시 게스트하우스 주변엔 철문과 벽돌 굴다리, 벽돌 옥상 등 드라마를 위한 세트가 제작됐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굴다리 등 지어진 세트가 모두 철거되면서 지금은 원래 있던 게스트하우스만 그대로 남아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문화사업체 대표 A씨는 “제작사인 넷플릭스 측이 촬영 후 세트를 모두 철거해 지금은 드라마를 추억할 만한 세트와 기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드라마 ‘이두나!’는 넷플릭스 TV 시청률 국내 1위·세계 비영어권 3위(지난 10월 23~29일 기준)를 기록하며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작품은 양림동 일대 거리와 광주천, 조선대 등 광주 도심 곳곳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아냈다.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에서 광주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데다 광주 출신 배우 수지가 열연을 펼쳐 지역 주민 사이에서 ‘광주 홍보 드라마’로 불리기도 한다.


작품을 보고 이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건 벽돌 굴다리 세트다. 드라마 속에서 셰어하우스 앞에 설치된 굴다리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 장면에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가설 건축물인 벽돌 굴다리는 당초 한 차례 완공된 뒤 광주시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이후 심의를 통과해 다시 지어졌지만 또다시 철거됐다. A씨는 “두 번이나 지은 드라마의 상징물이 철거될 때 양림동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아까워했다”고 말했다.

지역민은 광주시가 드라마 지원 및 현장 보존 등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드라마 관광 명소를 조성할 기회를 놓친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가 드라마 촬영지를 유치해 관광사업으로 확장하는 것과 상반된 행정이라는 주장이다.

양림동에서 활동하는 한 예술인은 “굴다리가 남아 있었다면 드라마를 추억하는 건 물론 드라마 내용처럼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시와 볼거리가 많은 호랑가시나무 언덕이 국내외 명소로 더욱 알려질 기회였는데 광주시가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광주 양림동은 1900년대 초 서구 선교사들이 광주에서 처음 근대식 학교와 병원 등을 설립한 역사문화마을로, 국내외 관광객의 인기 답사지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등 근대 건축물과 이이남 스튜디오 등 미술관이 모여 광주의 ‘삼청동’으로도 불린다.

광주=임동률 기자 exi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