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학회는 지난달 창립 50주년을 맞아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선도하는 한국회계학회’라는 미래 비전을 선포했다. 그런데 과거 반 백 년 동안 우리의 회계 투명성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그동안 한국 경제는 50여 년 전 나이지리아보다 낮은 1인당 75만원의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4300만원으로 증가했다. 회계도 1974년 상장법인 등의 회계 처리에 관한 ‘규정’에서 1980년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로 승격했다. 1998년 제정된 ‘기업회계기준’은 2011년부터 ‘국제회계기준’으로 전면 개편됐다.
그러나 회계 투명성에선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공신력을 인정받는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한국의 회계 투명성을 2016년과 2017년 한때 60여 개국 중 최하위로 평가한 바 있다. 올해도 47위에 머물렀다. 당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29위와 올해 28위인 것과 비교하면, 회계가 사회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을 잡는 것 같아 부끄럽다. 실제로 분식회계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는 회계 부정은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2020년 감독당국의 고의 주장과 달리 중과실로 결정된 KT&G나 재판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결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이 핵심이다. 지금 감독당국이 감리 중인 두산에너빌리티도 회사가 반영한 손실금액보다 그 금액의 귀속 시기에 대한 ‘판단’이 논란이다. 며칠 전부터 언론에 보도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매출 관련 총액과 순액에 관한 논란도 위험과 효익에 대한 경제적 실질의 ‘판단’이 중요하다. 50여 년 전과 달리 오늘날 거래와 사건은 획일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절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을 소위 ‘규정’이 아니라 ‘원칙’ 중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회계 투명성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기업이어야 하고, 감독당국은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러나 2017년 개정된 신외감법의 외부감사인 지정제도 등은 회계 투명성의 무게를 기업보다 외부감사인과 감독당국에 뒀다. 그러다 보니 회계 투명성이 예방보다 사후 징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 스스로 수정하거나 반영한 회계 처리를 사후적으로 판단할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며, 고의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중대한 과실과 단순 과실을 구분하는 현행 징계 체계가 회계 투명성에 효과적인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감독당국 내에 별도로 둔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직책을 강등하려는 최근 분위기는 회계감독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이제는 회계감독기구에 대해 고민할 때다. 회계의 양대국인 미국과 영국이 각각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와 재무보고위원회(FRC)라는 회계감독기구를 2003년과 2004년 별도로 설립해 운영해온 것은 회계 투명성의 주체가 회계감독당국이 아니라 기업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한국도 이제는 기업 스스로 주체가 돼 회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금융감독과 독립된 전문성 높은 회계감독기구의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 더욱이 최근 비영리·공공 회계, 노조 회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기업 회계와 통합해 감독 규모의 경제성을 이룰 수 있게 된 만큼 통합회계감독위원회(Integrated Accounting Oversight Commission)의 설립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