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07일 11:3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이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2000억원 가까운 차익을 거둘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한화오션 신주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인 신주인수권을 시장에서 팔았지만 물량을 대거 쏟아낸 탓에 '헐값'에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4조원의 혈세를 투입해 되살린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에 2조원에 매각한 것도 모자라 공적 자금 회수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이주 유상증자 발행가액을 주당 1만6730원으로 확정했다. 전날 종가 2만6800원 대비 38% 낮은 금액이다. 한화오션의 주가는 지난 8월 4만2000원을 찍은 이후 지난 3일 2만3300원까지 떨어졌다가 공매도 금지 호재로 하루 만에 12.13% 급등했다. 신주가 상장되는 오는 28일까지 주가가 2만원대 중반을 유지한다면 유상증자로 받은 신주 1주당 50%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한화오션 대주주 지분을 넘겼음에도 지분 27.5%(5973만8211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일찌감치 입장을 정하고 배정 받은 신주인수권(1972만641주)을 전량 매각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에 넘어간만큼 추가 자금을 투입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산은은 신주인수권을 시장에서 팔았다. 지난달 19~20일 총 1616만1396주를 주당 1580원에 장외에서 매각한 데 이어 23일부터 27일까지 5일에 걸쳐 나머지 주식(355만9245주)을 400~700원 대에 장내 매도했다. 평균 처분 단기는 1403원이다. 마지막 처분일인 지난 27일에는 매각 단가가 400원대로 떨어졌다. 산업은행이 신주인수권 물량을 대거 쏟아내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신주인수권 매도로 산업은행이 확보한 금액은 약 277억원이다. 그러나 보유한 신주인수권으로 주식을 배정 받은 후 시장에서 매도했다면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뒀을 것이란 게 증권업계 시각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때때로 대주주들도 유상증자 참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부 구주를 시장에서 팔고 신주를 인수한다"며 "산은은 신주인수권 매각을 통해 회수에 나섰지만 스스로 급하게 물량을 쏟아내면서 신주인수권 가격이 수급적으로 급락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이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인수한 투자자들만 큰 돈을 벌게 됐다는 얘기다.
신주인수권을 매각한 것은 산업은행 뿐만이 아니다. 한화오션의 주식 232만5577주를 보유한 금융위원회 산하 공적자금상환기금도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고 신주인수권증서를 전량 매각했다. 공적자금상환기금법4조1항에 따라 기금은 예보채상환기금 등의 출연과 부채 상환 등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기금에 배정된 신주인수권증서는 76만7714주로, 평균 처분단가는 주당 690원이다. 신주를 받아 매도했다면 70억원 이상을 거둬들일 수 있었지만, 신주인수권을 매각하면서 5억3000만원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그럼에도 매각 대행사인 예금보험공사 측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못해 날릴 뻔한 공적 자금을 신주인수권증서 매각으로 되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금은 신주인수권증서 매각과 별개로 보유 지분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처분할 계획이다. 이날 종가 기준 매각 규모는 620억여원 규모다. 블록딜의 할인율을 고려하면 현 주가 대비 낮은 가격에 이뤄져 거래가 이뤄져 회수 금액은 5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한 투자운용사 관계자는 "유상증자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 회수 규모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단기 회수 실적을 내기에 급급했던 것이 패착이었다"며 "장기적인 시각에서 회수 전략을 세워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화오션은 이번 증자로 총 8948만5500주를 신주로 발행해 1조4971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당초 계획했던 2조원에 비해 약 5000억원가량 조달 규모가 줄었다. 오는 8~9일 이틀간 구주주 청약을 시작으로 13~14일 주주 배정 후 실권주에 대해 일반공모를 한다. 주관사는 대신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이다. 신주는 오는 28일 상장한다.
업계는 잇단 호재로 자금 조달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은 올 3분기 74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한화그룹에 인수되기 전 대우조선해양 시절까지 포함하면 2020년 4분기 이후 12분기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조9169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95.3% 증가했다.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1542%에서 397%로 개선됐다. 사업부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강화 등을 통해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조달한 자금이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입된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한화오션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중 5700억원을 친환경 연료 기술과 함정 건조 시설, 생산 디지털화와 자동화를 위한 스마트 야드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인수합병(M&A) 자금으로도 사용한다. 글로벌 방산 사업 확장을 위한 생산 거점 확보와 해외 유지보수점검(MRO) 기업의 지분 확보에 4200억원을 투입한다. 회사 측은 해상 풍력 사업을 위한 지분 인수에도 3000억원을 배정했다. 나머지는 차세대 함정, 스마트십, 스마트 야드 등 신기술 개발에 207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사용 시기가 도래하지 않는 금액은 국내 제1금융권 등의 안정성이 높은 상품에 예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최근 주가 급등으로 시세 차익 가능성이 커진 만큼 우리사주와 구주주들의 초과 청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 계열사들의 출자 규모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화그룹의 방위산업 계열사는 지난 5월 제3자 배정 증자 방식으로 약 2조원을 투자해 한화오션 지분 48.16%를 확보했다. 한화에어스페이스(24.08%)가 가장 많은 지분을 들고 있으며 한화시스템(12.04%) 한화임팩트파트너스(9.63%), 한화에너지코퍼레이션싱가폴(1.69%) 한화컨버전스(0.72%) 등이다. 한화 계열사들은 지분율과 재무 부담을 고려해 출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