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영끌했어야 했는데…" 전셋값 상승에 무주택자 '비명'

입력 2023-11-06 06:38
수정 2023-11-06 13:48

지난해 서울 집값이 급락했을 때 '내 집 마련'을 못해 전세로 살면서 시기를 가늠하던 무주택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빠르게 오르면서다. 서울에서 전세로 사는 30대 A씨는 "작년 집값이 많이 내렸을 때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다 대출을 받는다는 뜻)을 해야 집을 살까 말까 했는데 올해는 전셋값마저도 영끌해야 하는 수준"이라며 토로했다.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는 지난달 21일 16억원에 전세 계약을 새로 맺었다. 같은 달 17억원에 맺어진 계약도 있다. 지난 3월 13억원에도 신규 계약이 맺어졌던 면적대다. 7개월 만에 4억원이 뛰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84㎡도 지난달 18억원에 새로 세입자를 들였다. 지난 7월엔 13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맺어지기도 했는데 불과 3개월 만에 4억5000만원이 상승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 1일 12억원에 새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2월 8억원에 전세 계약이 맺어졌던 면적대인데 8개월 만에 4억원이 치솟았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도 지난 2일 8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지난 1월 6억원과 비교하면 2억7000만원이 급등했다.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지난해 집값이 빠르게 내리면서 연초엔 전셋값도 덩달아 약세를 보였지만 집값이 반등한 이후로는 전셋값도 회복하기 시작했다"며 "강남권은 실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만큼 전셋값도 빠르게 오르는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비단 강남권 얘기만은 아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4단지' 전용 84㎡는 지난달 9억2500만원에 신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월 7억원까지 전셋값이 내렸던 면적대다. 9개월 만에 2억원이 넘게 상승했다.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 전용 84㎡는 지난달 25일 9억5000만원에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지난 8월 맺어진 신규 계약 8억1600만원보다 1억3400만원이 뛰었다. 연초(1월)엔 7억8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는데 이보다는 1억7000만원 상승했다.

동대문구 휘경동 '휘경SK뷰' 전용 84㎡는 지난달 6억원에 신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8월 맺어진 5억3000만원보다 7000만원이 올랐다. 답십리동에 있는 '래미안위브' 전용 84㎡도 지난달 7억3000만원에 세입자를 들였다. 직전 달인 9월 6억2000만원보다 1억1000만원이 뛰었다.

아현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단지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세입자들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는 ‘전세난’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올해 초만 하더라도 역전세난을 걱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딴판"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전셋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본다. 매매가격이 주춤하면서 오히려 전세를 살면서 '내 집 마련' 시기를 가늠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단 이유에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올해 하반기 들어 집값이 주춤해진 이후 현장 상황을 살펴보면 매매를 포기하고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커졌다"며 "이들은 집을 사는 대신 전세로 들어가 시장 상황을 관망하려 한다"고 말했다.

월세보다 전세 매력이 더 커진 점도 전셋값 상승을 뒷받침한다. 작년 연 6%대였던 금리는 올해 들어 연 3%대로 내려왔다. 이에 전세 대출 이자가 부담돼 월세를 살던 세입자들도 다시 전세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앞서 전세 대출 금리가 치솟으면서 아무래도 월세가 유리하니 세입자들이 월세로 몰렸지만, 현재는 상황이 바뀌었다"며 "아무래도 이자에 민감한 세입자들이 월세보다는 다시 전세가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다섯째 주(30일) 기준 서울 전셋값은 0.19% 상승해 전주(0.18%)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서울 전셋값은 24주 연속으로 오르고 있다.

세입자들의 심리도 개선되고 있다.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달 다섯째 주 95.3을 기록해 2021년 12월 마지막 주(27일, 95.7) 이후 96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하는데 200에 가까워질수록 시장에 전세로 나온 집보다 세입자들이 많단 뜻이다. 아직 기준선 아래에 있지만 연초(61.2)보다는 큰 폭으로 개선됐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