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뉘른베르크에서 19세부터 45년간 394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자가 있다. 그는 잔혹한 범죄자가 아니다. 범죄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한 16세기 사형집행인 프란츠 슈미트다.
슈미트는 그가 집행한 사형과 다른 형사 처벌에 대한 일기를 남겼다. 일기는 필사본으로 떠돌며 살아남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인쇄본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최근 국내 출간된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은 바로 슈미트의 일기를 역사학자가 분석해 쓴 책이다.
슈미트의 일기는 당대 범죄, 고문, 사회상, 법과 제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또 사형이라는 인류 사회의 최고 형벌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슈미트는 대를 이어 사형집행인으로 살아왔다. 일종의 근무 일지로 기록을 남겼다. 그는 견습공, 숙련공을 거쳐 정식 사형집행인인 장인(마스터)에 오르기 위해 가축을 대상으로 훈련까지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그에게 그저 밥벌이일 수는 없었다. 슈미트는 ‘나’라는 주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일기 중간중간 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어느 화폐 위조범의 화형일, 슈미트는 불이 죄수의 몸에 옮겨붙기 전에 그가 숨을 거둘 수 있도록 목에 끈을 감았다. 사형집행인이 베푸는 마지막 자비의 행위였다. 그런데 불길이 번지기 전 조수가 이 천을 몰래 잡아당기다가 죄수를 죽이는 데 실패한다. 슈미트는 그날 일기장에 죄수를 위한 기도를 적었다. “그가 이 끔찍하고 가련한 죽음을 통해 영생의 삶을 얻었고 주님의 아이가 돼 영원한 삶에 귀의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은 자연스레 사형 제도에 대한 생각으로 연결된다. 저자인 조엘 해링톤 밴더빌트대 교수는 서두에서 묻는다. “사형은 정말로 모든 곳에서 종식될 운명일까? 아니면 인간의 보복을 향한 본능이 우리 존재의 피부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혀 있는 것일까?”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 선고만 있을 뿐 집행은 멈춰 있는 상태다. 얼마 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형 집행 시설을 갖춘 4개 교정기관에 시설 점검 지시를 내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형제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