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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업계의 '워런 버핏'으로 평가받던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창업자에 대한 금융 사기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FTX가 파산한 지 1년 만이다. 암호화폐 업계의 제왕에서 세계 최대 금융 사기꾼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분께 미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재판에서 배심원단 12명은 만장일치로 뱅크 만에 대한 송금 사기, 증권 사기, 돈세탁 등 7가지 범죄 혐의에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이번 평결로 인해 뱅크먼은 최대 징역 110년 형을 받을 위기에 놓였다. 미국 형사재판에선 배심원단의 평결이 판사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7개 혐의에 모두 최고형을 선고받으면 형량은 110년을 넘길 수 있다. 최종 선고는 내년 3월 28일에 나올 예정이다.
뱅크먼은 이날 재판에서도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선고일 이후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 뱅크먼의 변호사인 마크 코헨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뱅크먼은 2019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FTX 고객 자금 약 100억 달러를 빼돌려 FTX 자회사인 알라메다리서치의 부채를 상환하고, 바하마의 고급 별장을 매입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기소됐다.
한때 암호화폐의 제왕이라 불렸던 뱅크먼은 지난해 11월 FTX가 파산한 지 12개월 만에 세계 최대 금융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는 메사수세츠공대(MIT)를 졸업한 뒤 2019년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설립했다. 이후 세콰이아캐피털, 소프트뱅크 등에서 투자 유치를 받으며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로 성장했고, 기업가치는 320억 달러(42조원)에 달했다.
승승장구하던 뱅크먼은 지난해 11월 벼랑 끝에 몰렸다. FTX의 자회사 알라메다리서치의 재정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투자자들은 FTX와 연계된 모든 자산을 매각하러 달려들었다. 결국 500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FTX와 130여개 계열사 모두 파산보호 신청했다. 암호화폐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최고경영자(CEO)에서 사임한 뒤 은신했지만 한 달 뒤 뱅크먼은 바하마에서 긴급 체포됐다. 미국에 송환된 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내 증인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지난 8월 다시 구속됐다.
뱅크먼의 측근들은 등을 돌렸다. FTX의 엔지니어링 디렉터였던 니샤드 싱은 지난 9월 "알라메다리서치가 고객 자금 130억달러를 유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뱅크먼의 연인이었던 캐롤라인 앨리슨 알라메다리서치 CEO, MIT 시절 룸메이트였던 게리 왕 FTX 공동 창업자 등 최측근도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이들은 뱅크먼의 유죄를 입증하려는 검찰 수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엘리슨 전 CEO는 "뱅크먼은 지난해 11월 파산 위기를 알고 있어도 X(트위터)를 통해 투자자에게 거짓 정보를 계속 흘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앞으로 뱅크먼의 형량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법무부는 내년 3월 최종 선고를 앞두고 뱅크먼에 대한 뇌물 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 최소 1억달러(약 1333억원) 상당의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다.
데미안 윌리엄스 뉴욕주 검사는 "금융 사기로 잡혀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기꾼들에게 경종을 울린 평결이다"라며 "암호화폐가 새로운 산업이라도 이런 종류의 부패는 꽤 오래된 범죄다"라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